전국을 다니면서 모금활동에 나섰는데 대전에 들렀을때 대흥교회 안종만 목사의 배려로 뷔페식당에 모임을 가졌다. 누군가 큰 소리로 “한 목사님, 축하합니다!” 했다. 잘못들었는가? 생각하는데 가까이 오신 분은 전 신학대학 정진황 학장으로 또 다시 웃으시며 “축하합니다”하셨다.
‘이런 인사가 있는가? 세상에 인사치고는! 저의 딱한 처지를 어떻게 보고 하신 말씀인지? 농담도 지나친 농담이니 농담으로 듣기엔 아닐테고.... 화재에 대하여 부정적인 별의별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축하의 소리도 듣는구나!’
그날 저녁 권혁봉 교수의 집에서 잠들기 전에 깊이 생각해 보니 화재 다음주에 욥의 설교를 했다가 화상부모들로부터 욕설 전화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구약학 교수로 욥기를 가르치신 정학장의 축하의 뜻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1990년 BWA 세계대회 준비 차 국내에 체류 중인 Isher Head 박사의 연락으로 BWA로부터 5,000불을 도왔고 선교사들의 만 여불에 침례교단 내의 200여 교회와 교인도 개별적으로 도왔는데 특히 영안교회 안경선 집사와 이제순 목사가 상경하여 500만원 헌금이 기억되고, 외부인사로 중구유치원협회의 100만원와 동양그룹 현재현 사장은 국가자문위원으로 수년간 같이한 인연으로 200만원과 청학회원의 100만원도 전달했다.
방미중엔 이동원 목사 교회의 설교 후 2000불 미주 침례교총회와 조효훈 목사 교회에서도 송금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돈이야 많던 적든 찾아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목사님들과 성도들과 지인들 수백명의 얼굴을 떠올리면 저들의 고마운 격려와 기도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90년으로 해가 바뀌자 년초에 우선 전교인 40일 2회에 걸쳐 24시간 매일 24명씩 연쇄기도에 들어갔다. 화상치료를 위해 국내의 몇 병원을 물색하던 중 화상부모들의 강력한 요구로 미국 치료를 위해 김장환 목사님을 찾아 의논한 결과 미국 텍사스 산안토니오에 있는 미육군병원에 무료수송(Charity Transportation) 치료를 소개해서 고마웠으나 치료와 체재 비용보다도 문제는 어린이 화상치료가 너무 어렵고 까다로운 전문기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어서, 더 좋은 병원 물색을 위해 미국을 또 방문하여 오크라호마의 놀만침례병원 화상치료전문의사 스투워드(Steuward) 박사를 찾아갔으나 아프리카에 출타중이어서 하와이와 LA, 워싱턴과 달라스를 거쳐 미국내에서 제일 유명한 갤베스톤 어린이 화상병원을 찾아내어 7월초에 출국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화상부모들은 5월 27일 주일 폭도들을 동원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교회당을 점거하고 교회와 사택 유리창에서 강대상까지 쇠파이프로 무참히 파손하는 난동을 일으켰다. 교인들은 4부 예배 모두 못드리고 길거리에서 가슴 아프게 울고 돌아섰다. 무조건 담임목사를 쫓아내고 교회 부지 반이라고 팔아서 보상치료에 공증하라는 것이었다.
반년이 넘도록 별다른 치료나 보상대책이 없는 교회에 대하여 화상원아 부모들의 고통과 분함이 그 얼마나 컷겠는가를 돌이켜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교회당을 파손한 자들은 1년도 안되어 급사했다고 들었다. 가슴 아픈 일이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괴한들이 던진 큰 돌이 우리 가족들이 모여 있던 2층 골방 유리창을 박살내고 큰 딸(한나) 바로 옆에 떨어지자 너무 놀라서 그만 졸도해서 5분간 간절히 기도하니 다시 깨어났다. “차라리 나를 돌로 치라”고 소리치고 그들에게 내려가려 하니 전대식 집사와 김문규 집사등은 저를 사무실에 가두고 문을 잠가지켰고 김원배 재무집사를 폭도들이 꿇어 앉힌 후 기름을 붓고 라이터를 들고 켰다 껐다 하면서 도장을 찍으라고 위협했으나 끄떡하지 않고 이겼다.
다음 주 주일에 참석한 최희준 선교사는 홍콩 침례신문 기자를 데리고 왔을 때 이 사실이 알려져서 큰 딸 한나를 그의 모교인 미국 배일러 대학교 전액 장학생으로 초청하여 미국으로 떠날때 저는 전액장학금 보다는 기숙사비만이라도 저가 반액 부담하기로 하여 고마움을 표시하게 되었다.
80일 24시간 연쇄기도는 민봉수 선교사의 수고로 PanAm비행회사 부사장의 부인이 침례교인이었는데 그녀의 마음을 움직여 14인 모두 왕복비행기 무료 티켓을 받아 미국치료를 일차 받게 되었다. 급히 서류를 만들어 미대사관을 찾아갔더니 토마스 영사는 침례받은 날자, 목사안수 받은 날자 등 몇 가지를 묻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한 목사님, 화상 어린이를 사랑하세요?” 했다.
“예, 그렇고 말구요” “아이들 이름을 말해 보세요”해서 다 말했더니 “그러면 모든 어린이들 생년월일을 말하세요!” 저는 ‘제출한 서류에 다 기록되어 있는데 왜 그걸 물으세요?’ 라고 대답하려다가 ‘이 영사가 나를 시험하는구나!’ 생각이 들어 조용히 “영사님 아이들 생년월일을 기억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했더니 “그러면 지금 가서 생년월일을 알아 1시까지 오시요!” 했다.
정신없이 교회로 돌아와서 화상원아 가정에 최병남 사무장과 같이 전화를 하니 연락이 안되는 집이 있어서 3시경에 늦게 갔더니 “목사님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저는 사실을 잘 설명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한 목사님, 바로 아래층에 내려가서 모든 여권을 찾아가세요”했다.
미대사관 토마스 영사의 특별한 비자 허락으로 7월 2일 부상원아 5인과 어머니 5인, 침례병원 죤 존스 의사 내외와 담임목사 내외 도합 14인은 비자를 받고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해서 달라스 도착후 휴스톤을 거쳐 갤베스톤(Galveston)섬 슈라이너스(Shriners)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게 되었다.
병원장 맥콜리 박사는 매우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맞아주면서 초기 치료가 너무 잘못되어서 앞으로 2차 3차로 18세까지 계속 치료를 해야 된다고 했다. 머무는 동안 저는 하도 진척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맥콜리 원장과 상담을 했다.
“박사님, 저는 불나던 날 현장에 있었다면 물에 적신 담요를 뒤집어 쓰고 들어가 저들을 구해내고 차라리 저가 10도가 넘는 화상을 입는 것이 좋았으리라고 수 없이 되새겨 보았는데 제 생각엔 여자 아이들은 몰라도 박호용은 남자 아이니까 무엇이든 필요한 나의 모든 피부를 희사할테니 아무 곳이나 칼로 피부를 빚어서 옮겨 붙여 잘 수술해 주십시요!” 했더니 “목사님, 고맙지만 자신의 얼굴, 목, 등, 엉덩이 및 다리의 피부색과 성질도 다 달라서 잘못 붙이면 얼룩덜룩하고 흉측해서 안되는데 다른 사람의 피부이식 수술(plastic surgery)은 불가능하고 안됩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 세상에 화상치료 이상 까다롭고 힘든 수술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당시 1년 교회 예산은 3억이었으나 4년에 걸친 치료비, 장례비, 합법적 보상비 및 잇따른 경비와 교육관 수리 기타 이십여억원 이상을 어찌 우리의 힘으로 감당했으랴! 오직 고통을 함께 한 고마운 성도들, 20년을 함께한 서울침례교회와 관심있는 동역자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긍휼과 자비로 인도하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어찌 그 고통과 환란의 용광로 불꽃에서 나왔는지 한 권의 책으로도 다 말할 수 있으랴!(중략)
25년이 지난 현재 7인중 CTS에 같이 출연한 박호용은 한양공대를 나와 다음회사(인터넷)에서, 박성희는 간호사로 둘 다 서울교회 출석, 윤희는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SBS 등 작가활동, 라하나는 하와이 슈라이너스병원 치료 중 방문하여 기도했고 하와이 주립대에서 만난 청년과 한국에서 결혼했다.
미국 이민시킨 김민숙은 죠지 워싱턴 대학원을 나와 국가공무원으로 선교활동, 뉴욕으로 이민간 김지영과 전효민은 연락 없는 상태이다. 일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서울침례교인과 동역자 친구들의 눈물의 기도가 올라가 두터운 구름이 되어 축복의 단비를 내리듯 오직 주님의 합력선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34:4,6)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