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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붓 가는데로”-23

“내탓이라오”에 대한 반론(反論)


자기의 불행과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을 매우 교양 있는 인격자로 모두 치부한다. 반면에 자기의 불행이나 실패가 남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면 못난이의 변명이라고 수근 거린다.


자기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을 전적으로 100%로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 과연 정확히 옳은 판단인가? 나의 이런 불행상태가 조금은 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일까. 물론 자기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탓임에는 부정할 수 없으나 약간은 남 탓도 아닐까?


가령 나라경제가 어려워져서 내가 실직했다고 할 때 그 원인이 실직자 나에게 100% 있단 말인가? 물론 여러 직장인 중에 자기만이 퇴출당했을 땐 자기 탓이 있겠지만 나라경제가 잘 돌아갔더라면 약간의 결점 때문에 자기가 퇴출되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강원도 제자가 해주는 옻닭을 나는 극구 아내에게도 먹으라고 강권하다싶이 했다. 위장병에 특별히 좋다하기에 위장이 약한 아내를 위해 뒷생각은 못하고 우선 앞생각만 해서 먹으라고 강권했다. 아내는 혹시라도 옻독이 오르면 어쩌나 하면서도 일단 옻고기를 만지기 시작 했는데 손에 아무런 징조가 없었더라는 것. 그래서 나의 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괜찮겠지 뭘하는 자기 판단에 의해 옻닭을 먹었다.


그런데 해가 지기 전에 옻독이 온몸에 번지기 시작했고 몇 일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편이다 나는 무사했지만. 미안하오, 미안해. 내가 억지로 먹으라고 해서 그만이라고 아내 앞에 나는 수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를 드렸다. 아내는 말했다. “다 내 탓이라오, 내가 먹었어요. 내가 한 일입니다


아내는 타책(他責)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고 끝내 자책(自責)하고 있었다. 나는 이때 아내가 자책을 90%하고 영감인 남편 타책을 10%라도 넘겨주었으면 내 마음이 편하겠는데 너무나 정직하고 착하고 기계적인 아내인지라 100% 자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답답한지고. 좋다. 자기에게 생긴 일에 그 책임을 남에게 돌이지 않는 것은 누구나 칭찬할 덕()이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게 자책 자는 비관적이요 우울적 성격을 지닌다. 지나친 자책감은 자기 절망으로 나가고 마침내 극한 상황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심리학계나 상당학계의 연구결결이기도 하다.


지나친 자책으로 자기를 파괴시키기보다 약간의 책임을 남에게 돌림으로써 자기 학대를 좀 덜했으면 하는 것이다. 건전한 자기유지도 주변 사람에게 오히려 평안을 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원인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아내 하와 때문이라고 한 것을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으셨다.


그것은 아담의 범죄의 원인을 100% 하와에게 돌리기 때문이었다. 가령, 아담이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 전적으로 제 탓입니다. 그런데 옆에 하와도 거들었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이런 태도에 O,K 했을지도 모른다.


내 탓이라오라고 하는 겸양의 태도가 또 하나의 고등한 인간의 율법적 자기 공로가 될 위험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세계는 공존 공생 공영(共存 共生 共榮)의 그물일진데, 거꾸로 남의 불행과 실패에도 당사자만의 탓이 아니라 내 탓도 섞이지 않았겠나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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