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나 국가가 잘 운영되려면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 장(長)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장의 지도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지도자를 존중하고 따르는 구성원들의 태도이다. 장을 세워놓고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협력을 거부하면 아무리 유능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 단체를 잘 이끌어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에게는 호 불호와 여야 간에 공석에서는 경의를 표함으로 지도자에 대한 예를 나타낸다. 전쟁 중인 두 나라의 대표가 회담을 할 때도 피차 격식에 따라 예를 다 한다. 자기 나라 장군이 회담 장소에서 적장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경의를 표했다고 해서 그것을 조국을 배반하고 적국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근래 우리의 영상 매체에는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잊은 듯한 행위와 표현이 때때로 방영된다. 대통령이 투표소에서 한 자원봉사자에게 수고한다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그 자원 봉사자는 대통령의 선의의 악수를 무시하고 얼굴을 돌렸다. 누구든 대통령을 싫어하고 좋아하고를 떠나 국민으로서의 예의는 갖춰야 하는 것이다.
우리 매스컴은 때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이름을 동내 아이 이름 부르듯 하면서 그의 가계(家系)와 사생활을 폭로하고, 북쪽은 우리 대통령의 실명을 부르면서 욕설과 위협을 거침없이 내뿜는다. 당장에 팔을 걷어 부치고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자면서 피차 악담과 위협을 되풀이하는 것은 화해와 공존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제적 예의에서도 벗어난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일어난 직후 몇 시간 동안의 대통령의 거취에 대한 기사로 물의를 일으킨 일본 산께이(産經) 신문의 서울 특파원 가토 다쓰야의 태도 또한 무례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대통령이, “나 여기 있소, 나 어디 가요” 하며 낱낱이 거취를 밝히며, 어느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거취를 묻는 이에게 “대통령이 여기 있었소, 저기 있었소” 하고 장소를 밝힌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거취는 당국자가 밝힐 때까지는 국가 기밀이며, 또 대통령이 한 번 청와대 밖으로 나가려면 수 십 수백 명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세상이 아닌가.
성경에는, 무릇 다스리는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가르침이 있다(롬13:1).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아는 왕은 선을 수행하는데 쓰시고 여호와를 거역하는 왕은 심판의 도구로 쓰셨다. 그래서 야곱은 바로 왕 앞에 고개를 숙였고,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신임을 얻었으며,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제국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켰고,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으로 고국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했다.
그러므로 세워진 지도자는 선악 간에 그 지위만큼은 존중돼야 한다. 영적 지도자로서의 목사 또한 스스로 선하게 쓰임 받을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