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의하면 1927년 종로에 ‘카카듀’와 ‘멕시코’ 다방이 문을 연 것이 우리나라 찻집의 효시라고 한다. 당시의 다방은 지식인과 문화 예술인의 집회 장소 역할을 하면서 “커피 끓이는 시대”를 열었다.
1950년, 한국동란에 참전한 미군과 유엔군이 인스턴트커피를 들여오면서 “커피 타는 시대”가 되더니, 1980년을 전후해서 다방이 커피숍과 카페로 탈바꿈 하면서 “커피 내리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1999년에 스타박스 체인점이 서울에 들어오면서부터 “커피”는 모든 차(茶)의 대명사가 됐다.
커피를 포함해서 두세 가지의 차가 없는 집이 없을 터인데도 커피숍이 성행하는 것은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이유가 단순히 차 마시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어떤 글에서 그 이유를 ‘차 30, 분위기 풀러스 알파 70퍼센트’라고 쓴 일이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노은동(老隱洞) 집 둘레에만 다섯 곳의 커피숍이 있다. 그 중에는 언제나 주인이 자리를 지키며 고객을 맞이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주인이 없는 때가 더 많은 곳도 있다.
또 같은 커피를 마시는 데도 어떤 날은 머그잔에 주고 어떤 날은 찻잔에 부어주는가 하면 갈 때마다 맛과 향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것은 아마 주인이 다른 일에 정신을 빼앗겼거나 커피숍을 그만두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은 좋으나 고객이 가면 얼른 에어컨이나 히터를 켜주면 좋으려니와, “더우세요, 에어컨 켜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고객은 주인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고 차를 마시지만 스스로 그 집을 다시 찾을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커피숍은 대게 주변이 깨끗하고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밝고 친화적인데 반해 교회는 곳에 따라 주변에 쓰레기 봉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건물에는 페인트가 벗겨져 우중충하고 밤이면 입구와 주변이 캄캄한 곳이 많다.
커피숍들은 목적이 무엇이건 앞 다투어 성탄 트리와 장식을 안팎에 설치하는데 정작 교회는 외벽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한 곳이 흔치 않다.
오직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신자들도 중요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 주일에 받은 은혜의 말씀을 생각하며 목사(님)의 얼굴이라도 뵐까 해서, 또는 그저 교회가 좋아서 지나는 길에 잠시 내리거나; 기쁜 일, 슬픈 일, 절박한 일을 당해서, 또는 외로워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범자들이 거리를 횡행(橫行)하는 어지러운 시대이기는 하지만 교회는 어떤 방법으로든 문을 열어놓아 신자들이 찾아가 위안과 평안을 구하는 곳이 되어야 하겠다. 또한 영적 성별(聖別)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당)도 주변 환경과 성별하여 정결하고 아담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스럽게 단장하고 신자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휴식과 끽다를 위한 장소를 교회와 비교하는 것이 썩 좋은 대조는 아니지만, 남부여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커피숍이니 그 이유만이라도 살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목사도 가끔은 커피숍에도 가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