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고등학교 시절 국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 댁에 가서 유성기(留聲機)를 돌리면서 듣던 “겨울 나그네” 생각이 난다. 이 가곡(歌曲)은 독일의 시인 빌헬름 뮐러가 쓴 스물네 편의 연작시를 슈베르트가 작곡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시를 쓴 뮐러는 슈베르트가 그의 시를 작곡한 1827년에 33세의 나이로 죽었고, 슈베르트 역시 바로 그 이듬해인 1828년에 불과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과 작곡가는 죽었으나 그들이 남긴 시와 음악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으니 참으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하겠다. (히포크라테스)
“겨울 나그네”는, 춥고 음산한 겨울을 정처 없이 떠도는 한 고독한 방랑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물 네 편의 시 중 다섯 번째 것이 일찍이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려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리수”이다. 4절로 구성된 시 중 1절은: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꾸었네
가지에 희망의 말[들을] 새겨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보리수나무는 석가모니가 그 아래에서 참선(參禪) 중에 도를 깨달았다 하여 유명해진 나무이기도 하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가신 마므레 상수리나무와 이세벨에게 쫓기던 엘리야가 천사의 도움을 받은 로뎀 나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세상에 이름을 떨친 나무가 아니더라도 마을의 정자 옆이나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큰 나무는 흔히 외롭고 슬픈 사람들이 홀로 찾아가서 마음을 달래는 반려(伴侶)요 “나만의 보리수”이다.
알다시피 우리 조상들은 과거에 급제(及第)하기 위해 또는 학문의 과정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독해야 했다. 선비들은 그 중 기존 삼경인 “시경, 서경, 주역”에 “춘추와 예기”를 더해서 오경을 읽다가 후에는 “악기(樂記)”를 더해서 육경(六經)을 공부했다. 그 옛날부터 음악이 학문의 필수 과목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선비들은 학문의 일부로서 음악의 이론과 실재를 연구하면서 풍류 또한 멀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학문에 실용성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인문학이 소외되어 우리말 교육과 의례, 문학과 예술, 특히 고전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소멸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겨울이 가기 전에 목회에 틈을 내어 “겨울 나그네”를 한 번 감상해보는 것이 어떨까. 한 시간 이십 분의 시간에 비해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한 나라를 호령하는 절대 권력자나 세계를 장악한 글로벌 기업의 사주(社主)나 신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목사라 할지라도, 여름의 절정에 가을이 오듯, 불현듯 손이요 나그네가 될 수 있다는 가변의 이치를 일찍 깨닫고 보리수 한 그루는 찾아두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