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이사벨 여사의 사랑의 새 생명
1970년 부산 동래의 거제리 남문침례교회 개척 시절, 생활고로 인하여 나는 당시 이사벨 여자중학교의 유금종 교장을 찾아가 개척교회 사정을 얘기하고, 이사벨 여중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후 여고에서 송광옥 교목을 도와 성경을 가르치게 되었다. 나는 당시 신동혁 목사의 인격과 덕성 그리고 유금종 교장의 성실함과 고매한 신앙심에 감동을 받은 바 있다. 유금종 교장의 부군이신 신동혁 목사님은 이 학교의 이사장이고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인 안이숙 여사와는 이종사촌으로서 “복음 선교회”를 설립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성경교육을 통해 여중고생들과 여러 가지 복음의 증거의 좋은 추억들이 있다. 무엇보다 이 학교의 설립에 공헌한 뒷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미국에 사는 이사벨(Isabelle)이라는 부인은 첫 아이를 해산하다가 갑자기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불치의 병에 걸렸다. 그 부인은 치료를 위해 많은 재산을 들여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병이 더욱 악화되자 병 치료를 그만 포기하고, 기도하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수령된 의료보험료와 나머지 돈으로 더욱 어렵고 불쌍한 처지의 사람을 돕는 일에 사용하기로 결단했다. 그리고 그 여인은 그 후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한국동란 중에 이 돈으로 부산 동래구 거제동에 고아원이 생겼는데, 신동혁 목사와 유금종 교장은 고아원 사업에서 후일 학교를 세웠고 그 고인의 이름을 따서 이사벨이라고 명명했다. 부인의 장례식 때에야 비로소 친지들이 그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남은 치료비를 한국에 보내서 고아원이 되고 나중에 학교가 된 것을 알고 모두가 놀랐다.
학교 창립 2주년이 되던 날 남편 데이비드(David)씨가 고 신동혁 목사와 현 유금종 이사장의 초청을 받고 부산에 왔다가 본교 교사 건축에 재정이 부족한 것을 알고 미국의 자기 재산 6만 불을 또 보내 주었다. 이 학교가 바로 부산에서 가장 투철한 선교학교인 이사벨 여자중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2001년부터는 남녀공학으로 2,000명의 학생들이 지금도 교문을 드나들고 있다. 한 여인의 따뜻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확고한 씨앗으로, 그녀의 죽음이 새 생명의 부활로 꽃 피우고 기적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현 복음학원 유금종 이사장은 이사벨의 씨앗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학교를 40여년이 넘도록 꽃피우고 발전시키므로 수많은 그리스도인 인재를 배출시켰고, 오늘날 4만여 명이 넘는 이 학교의 졸업생들에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의 열매를 거두기에 이르렀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부엌데기 로렌스의 겸손한 사랑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와 하와이의 성자 다미엔(Damien)을 닮은 로렌스 성도의 성별된 삶을 소개한다.
니콜라스 헬만 로렌스(Lawrence, 1611-1691)는 프랑스의 성도로서 일찍이 보잘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한때 군대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무의미한 삶에서 1666년 55세 때에 깊은 신앙생활에 들어간 후 파리의 깔멜 라이트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 후 25년간 80세의 노인이 되어 죽을 때까지 수도원의 부엌데기 노릇을 했다. 그의 경건하고 검소한 사랑의 실천 생활은 빛이 되었다. 그는 항상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와 함께 계신 것을 여실히 느껴서, 쓰레기 하나에서 지푸라기 하나에, 새끼 토막 하나에서 음식 쓰레기 하나에 이르기까지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의 단순한 매일 매일의 삶이 그를 거룩하게 했다. 그의 명성이 무언중 퍼져서 당대의 제왕까지도 몸소 그의 부엌으로 찾아가서 그의 가르침을 구했다.
“어떻게 그대는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는지?”라는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부엌에서도 주의 만찬석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가까우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의 실천이다. 이것이 곧 십자가의 사랑을 짊어지고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 하겠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
헌금 접시 위에 선 소년의 사랑
영국 스코틀랜드의 어느 작은 시골 장로교회의 목사님에 대한 일화를 읽은 일이 있다. 당시 공업화 현상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가는 작은 시골교회인지라, 목사님이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또 그 동리의 사람들은 까다로운 사람들로서, 저들의 마음은 차가웠고, 복음의 진리에 대해 도리어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러다 보니 그의 사역을 통해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장로들의 선동에 의해 목사님은 강제로 교회를 떠나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이 시골교회를 고생하며 섬겨오던 목사님의 사역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주일 예배 중 헌금 쟁반이 돌려지고 있을 때 한 소년이 쟁반을 받아 바닥에 놓고는 일어나 그 위에 올라섰다. 그 소년은 “나는 어리지만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 나는 드릴 것이 없어 나 자신을 고스란히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랑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기적의 씨앗이 되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8:5)라고 고린도 교회에게 말씀하셨는데, 이 쟁반 위에 올라서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 소년이 1817년 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간 최초의 선교사 보비 모팻(Bobby Moffat)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구원시켰다. 이 모든 결실은 그 작은 교회에서 그리고 결실이 없어 인정을 못 받은 그 목사님의 인격과 충성스런 사역에서 시작되었다.
그 목사님의 신실한 인격과 삶에서 감동과 영향을 받은 한 소년의 열매로 아프리카의 수많은 영혼을 결실로 거둔 것이다. 이 사건은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슥4:10)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하는 작은 일에도 주님은 손해 보거나 실패하지 않으신가. 낙망치 않고 사랑으로 충성을 다할 때 기적의 열매는 맺힌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한명국 목사
BWA 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