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을 바라보는 권목사는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세련된 사람 같다. 많은 성화의 장도(長道)를 걸어온 것 같다. 평생을 목사로 산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 정도로 보아줄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나의 10代 산야(山野)생활을 생각하면 나도 그렇고 그런 사람 같다. 다시 말하면 심성(心性)이 근본적으로 선하지 못했다. 아침 QT하기 위해 비스켓 한조각과 Coffee 한잔을 손에 들고 아파트 정원 벤치에 앉았다가 밑을 내려다보면 거기 생명체가 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작고 작은 개미들이 아침 일찍부터 뭔가를 입에 물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개미 생활을 본다. 나는 먹던 비스켓 조각을 조금 떨어뜨린다. 개미 한 마리가 이를 발견하고선 무슨 Sign을 주었는지 순식간에 수 십 마리들이 몰려와서 비스켓 조각을 물고 자기 집으로 향해 들어간다.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다. 지금 내 마음이 선하니까. 오늘 아침 개미와의 무언의 친교를 나누고 비스켓 아침끼니를 선사한 나의 70여년 전 10代의 산야에 있었던 나의 행적으로 추억을 돌렸다. 고향 뒷산에 올라갔다. 오늘 아침에 보던 개미보다는 훨씬 더 굵은 개미의 행렬이 있었다.
전투를 하러가는지 아니면 이사를 하는지 나는 알바 없지만 이 개미 떼들이 떼를 지어 어디로 행군하고 있었다. 마른 땅위의 안전한 그들의 행군대열이었다. 나는 때마침 소변이 보고 싶었다. 그 넓은 땅을 두고 하필 개미 행군대열에 다가 오줌을 싸서 갈겼다.
개미 떼들은 갑자가 액체홍수를 만났다. 애굽 군사들이 홍해에서 수장했듯이 개미는 청천하늘에 40도의 소변액체홍수를 만나서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어떤 놈은 익사하고 어떤 놈은 허우적거리고 어떤 놈은 도망가고 어떤 놈은 부상당하고.
그걸 바라보는 나는 통쾌했다. 아, 재미있어라! 나무꾼이 던진 돌팔매에 개구리 머리통은 깨어지는 것이 재미라 했던가. 10代 권목사의 심사에는 조금도 “사랑”이니 “친환경적”이니 하는 것은 전무했었다. 어머님이 10代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가까운 텃밭에 가서 아침 호박잎을 따오라는 것이다. 된장에 호박잎쌈은 농촌아침의 특별메뉴였다.
나는 호박잎을 따러갔다. 아침에 먹을 만큼의 호박잎을 따서 그냥 집으로 직행이면 오죽 착할까마는 꽃 중에 호박꽃처럼 부담없이 관용한 꽃, 그 깊숙한 호박꽃 속에 호박벌꿀 한마리가 정신없이 꿀을 채취하느라 정신을 다 팔고 있는데 10代 권 목사의 불선(不善)한 심사가 발동했던 것이다. 나는 그 호박꽃의 입구를 틀어막고 풀줄기로 꽁꽁 묶어 버렸다.
호박벌꿀은 꼼작 못하고 호박꽃 속에 포로 신세가 되었다. “윙윙 살려 주세요” 꽃 속에서 호소하는 그놈의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되려 그것은 아련한 노래 소리로 들렸다. 그것을 귀에 대고 즐기면서 “아 기쁘다, 아름다운 노래여” 했다.
그런데 그것을 집에 갖다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두어 시간 뒤에 호박꽃을 보니 소리가 없는지라 열어 보니 그놈은 시체가 되어 있었다. 호박꽃 벌은 나에 의해 끝내 그의 일생을 마쳤다. 그는 나에 의해 사형을 당한 것이었다.
10代의 나의 심사는 히틀러와 다를 게 없었다. 무고한 개미에게 소변홍수는 왜 했으며 부지런한 호박꽃 벌에게 사형집행을 왜 했던가? 성경은 나의 10代 심사를 말해주고 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17:9)
그러나 너무 자학하지는 말자고 했다. 나의 친구 어떤 놈처럼 어린 호박에게 말뚝을 치지는 아니했으니까. 그리고 남의 집 오이는 떠먹지 아니했으니까. 그러나 그 모두가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이다. 지금은 성화된 목사였다.
水流(수류) 권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