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문제(問題)와 답(答)


필자가 얼마 전에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를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요즘 목회자들의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다. 지방회만 가도, 또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이 말은 심심치 않게 들어온 바다. 이뿐인가? 요즘 우리 사회는 온갖 문제투성이가 난무(亂舞)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문제가 많고, 정권을 잡고 있는 분들이 문제가 많고, 가정에서 아이들과 부모들은 상대방에게 문제가 많다고 한다. 또 학부모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이 문제가 많고, 군대에서는 선임병들이 문제가 많다고 아우성이다. 이러한 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어디하나 공동체가 있는 곳곳마다 이러한 문제들이 없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더라도 거의 귀에 익숙한  단어가 사건, 사고를 통해 일어나는 문제 타령이다. 저는 그래서 그 선교사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될 수 있을까요?” 나중에 답을 주겠노라고 했다. 목회자들이 문제가 많다고 한 그 목사에게 답을 물어봤다. 역시 그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문제들이 있다고 하는데 정작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답을 찾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말하기 쉬운 말로 문제만 발설하고 본인은 그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답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사실 모든 문제의 답은 문제에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다.


그런데도 애써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외면한다. 어떻게 보면 모든 곳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 골치 아픈 문제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인가? 이제는 답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대 정신과교실 연구팀이 한국 20세 남성의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일이 있다. 그 결과에 의하면 한국의 남성 10명 가운데 4.5명이 “성인아이”(미성숙 어른)로 나타난다. 이는 20세 남자 2명 가운데 1명이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대인 관계나 사회생활에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원만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격장애의 양상을 본다면 첫째는 편집성 인격장애이다. 이것은 타인의 행동에 순수한 동기로 보지 못하고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안다. 둘째가 히스테리성 인격장애이다. 이 장애가 있으면 감정이 불안하고 외부자극에 아주 민감하다. 진실성이 없고 지나치게 이기적이면 감정조절이 어렵다. 이들은 환경과 여건에 따라 극단적 행동(자살, 묻지마 살인, 동반자살)등을 보일 수가 있다.


셋째, 회피성 인간장애이다. 타인이 자기를 평가함에 지나칠 정도로 과민하게 반응한다. 지나치게 소심하여 때로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여기서 나타는 것이 거절감과 수치심이다. 이러한 인격장애의 대부분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조금씩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방치하게 되면 비인격적 태도가 나오게 되고 단절된 삶을 살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사회는 이러한 많은 상처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외상(外傷)을 입으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듯이 내면에 있는 상처 역시 치료를 받아야 바르게 살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이 하루속히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모든 문제의 핵심에는 욕심이라는 거대한 암초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사는 것은 거기에 버릴 수 없는 욕심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이 잘못인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또 이러한 문제는 계속적으로 순환(循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엄밀히 따지자면 아무리 이런 것을 소유해도 관속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썩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굳이 답을 단다면 성숙된 어른들이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가 없는 분들이 먼저 몸으로,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 질 때 많은 문제들은 해결되어 진다.


그러므로 내 주위에 문제가 많은 것이 아니고 상처받고,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제 그들을 향해 격려와 배려 그리고 사랑을 베푼다면 아마 이 땅에도 얼마가지 않아 문제없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문제가 있다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인식하고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에 따라 성숙한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가 구분되는 것이다. 문제와 자기 자신을 분리하지 못한 채 남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며 절망에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음은 분별력과 판단력을 상실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우리의 문제가 나만 피해를 보고, 나만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건전한 자아성찰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자기의 자아를 죽이는 것이다. 많은 문제들 앞에서도 ‘분명히 답은 있을거야?’ 라고 생각하는 건전한 자아성찰이 필요하다. 반면에 모두가 나쁜 사람이고,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고 하면서 한숨과 분노로 산다면 이는 어떻게 보면 자기학대라고 할 수 있다. 자기학대는 지금까지 배운 습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비판 세력과 판단만 하는, 그래서 절망하는 삶으로 사는 인생들이 된 것 같다. 이러면 행복은 없다. 미래도 없다. 행복과 미래는 우리가 자기 내면을 보게 될 때 이루어질 것이다.


이규호 목사 / 처음사랑교회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