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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교학 이후에 나타난 현대설교의 동향과 과제-4 (A Study of the Trends and the Tasks of Contemporary Preaching After the New Homiletics )


3) 설교자의 권위를 배제한 자유로운 결론

크레독은 이 시대의 설교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그 한 원인으로 설교자와 청중의 관계가 전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간파하였다. 그는 기독교가 심각하게 쇠락함으로써 교회가 더 이상 세상에서 문화적 지원의 발판을 잃어버렸다고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설교자는 성직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본문의 권위를 담보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직시한 크래독은 성경의 저자와 본문이 차지했던 권위를 청중에게 내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와 성경 저자가 의도한 본문의 의미를 강조하는 대신 청중이 설교에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하는 방식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설교의 시작은 복음이 아니라 청중의 경험이며 청중의 기대를 고조시키기 위해 비권위적인 귀납법 설교가 보다 적합한 통화 방식임을 주창하기에 이르렀다.

크레독은 연역적 설교에서 청중은 설교자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명제에 대한 반감으로 인하여 설교자와 청중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반면에 귀납적인 설교는 단정적이기보다는 설명적이며, 명령적이기보다는 권면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진다고 강조하면서 이런 이유로 설교자는 청중의 삶에 어떤 결론을 다시 적용시키려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명제적 전통설교에서 결론이 주로 설교 마지막에 위치하면서 결론을 통하여 설교자는 자신이 펼쳐온 논리적 귀결로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제시한다면, 신설교학자들은 바로 그 시점에서 설교자가 권위를 내려놓고 청중에게 마무리를 맡기라고 말한다

 

II. 신설교학의 비평적 평가

찰스 캠벨(Charles L. Campbell)은 신설교학을 비평하면서 먼저 몇 가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첫째, 신설교학자들이 주장하는 내러티브 설교는 설교가 성경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점이다. 내러티브 설교는 성경의 내용, 즉 스토리 안으로 들어가서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를 전개시킨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주제(제목)설교가 설교 본문을 떠나 설교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주장을 펼치는 것과 비교할 때, 보다 성서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둘째, 설교의 형식을 다양하게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설교가 연역적 논증방식에 입각한 3개요 형식의 일률적인 틀에 묶여있었다면 신설교학은 귀납법적 형식을 비롯하여 이야기설교, 내러티브 플롯, 현상학적 설교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셋째, 청중의 지성에만 호소하는 기존의 설교가 이제는 청중의 감성을 터치하는 방식을 추구하게 된 점이다. 하지만 신설교학은 몇 가지 중대한 결점을 가진다.


1. 신학적 전제의 문제

신설교학의 가장 큰 문제는 신학적인 것으로서 청중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신설교학은 연역적 방식의 전통설교가 더 이상 청중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효율적 전달을 위한 다양한 방식은 개발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성은 잃어버렸다. 신설교학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권위와 성서 저자의 의도에 무관심한 양태를 보여주는데 이는 신설교학이 전통적인 성경해석 원리를 떠난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특히 데이비드 버트릭(David Buttrick)은 성경의 권위를 공격하면서 설교자가 성경의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성경의 권위를 신학적 선 이해와 방법론으로 대체하였다. 즉 설교 본문의 의미란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설교의 사건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청중 의식 가운데 형성되는 것으로서 다분히 경험 중심의 실존주의적 해석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해석학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의 책 설교학(Homiletic)에서 버트릭은 불트만의 해석학적 방법론을 따르면서 성서의 비신화의 과정이 모든 설교자에게 필수적 과제임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그의 설교학적 이론은 그의 성서관에 근거한다: “성경을 언급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수 있다고 우리는 담대히 말해야 한다. 반드시 성경에서 설교해야만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 성경, 그리고 설교로 흘러가게 하는 모델은 복음에 위배될 뿐 아니라 엄청난 교만으로 이끌어 간다.” 이와 같은 버트릭의 성서해석관의 문제에 대하여 최진봉은 버트릭의 신학적 근거는 새로운 해석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히면서 새로운 해석학의 중심에 서 있는 불트만의 역사적 케리그마의 비신화화 논리를 지적하였다. 따라서 신설교학의 신학적 토대는 결국, 실존주의적 성서해석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과 그의 제자 언스트 휴치스(Ernst Fuchs), 그리고 게르하르드 에블링(Gerhard Ebeling) 등의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의 실체가 무엇이냐라는 것이 전통 성경해석의 목표였다면 새로운 해석학은 복음의 실존적 의미가 무엇이며 이것을 어떻게 현대 청중과 소통할 수 있느냐에 관점을 둔다. 즉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주석적으로 밝혀서 정확한 의미를 전하는 것이 전통설교의 목표였다면 신설교학은 복음의 의미를 실존적으로 해석하여 그 복음의 교훈과 의미를 어떻게 하면 청중에게 잘 전달할 것인가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자연히 성경의 원래적 의미는 여기에서 약화된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자칫하면 변할 수 없는 우주적 진리의 말씀은 잃어버리고 일종의 도덕적 교훈이나 삶의 지혜를 들고 나가 이것이 성경의 말씀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결국, 신설교학은 명제적이며 연역적인 설교를 경멸하면서, 청중을 본문보다 더 높이 두었고, 경험을 지식 위에 놓으면서 본문의 의미를 종종 흐리게 하거나 미성숙하게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새로운 설교학을 실천하는 자들 중의 상당수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불완전한 입장으로 인해서 성경의 본문 그 자체가 청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히 인식되지 않는 심각성을 동반한다.


문상기 교수

침신대 신학과(실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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