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 전준호(45)는 미술계의 비주류의 삶을 살았던 작가인 만큼 도전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조선일보에서는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
「비주류의 삶은 도전 의식을 고취시켰다. “좁은 미술계 안에도 전공·학연 등 권력이 만들어낸 장벽이 많아요.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으니 자유롭게 ‘크로스오버’를 시도했지요.”
‘세계의 전준호’가 됐지만 ‘지방 작가 전준호’이길 바랐다. 전준호는 불편한 기억만 가득했던 유년의 기억으로 제 발로 걸어갔다. 가족과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살고 있다. “서울 사람들은 ‘언제 올라와 작업해요’ 물어요. 부산 친구들까지 ‘니 언제 올라갈끼고’ 물어요. 작가는 불평불만 가득한 피해자가 아니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관찰자로서 마이너리티(소주자)시각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조선일보 2014.9.16자)
2012년 세계최고 권위의 국제미술행사인 “카셀도큐멘타13”에 한국작가로서는 20년 만에 참여했고, 내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한국작가로도 초청받은 바 있다.
내가 이 작가의 나무를 깎아 만든 해골조각을 지상을 통해 보고 느낀바가 있었다. 작가는 부언 설명했다. “엎드린 해골이 묻는다…당신 삶은 진실됩니까?”
해골이 산자를 보고 산자의 삶의 진실을 질문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골 대 산자. 아마 산자로서는 해골이 최대의 상대일 것이다. 이 대화에서 주체자는 해골이었다. 해골이 질문하고 산자가 답변하라는 장면이다.
산자가 쩔쩔매고 있다. 왜 그런가?
해골은 산자의 선배이기 때문이다. 이미 산자의 삶을 다 살고 삶 세계와는 딴 세계는 죽음의 세계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산세계의 산자의 삶을 보니 해골은 그의 머리가 삣죽할 만큼 경악스러웠던 것이다. 해골도 해골되기 전에 살았을 때의 삶을 회상해 보니 거기엔 진실이 없었다고 그제서야 느꼈던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허구적인 것이었던 가를 해골은 경험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대선배인 해골이 질문한다.
“산자여, 당신의 삶은 진실 됩니까?”
산자여 이제 산자가 답변할 차례다.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속이지 말라. 해골은 다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경험한 인생의 선배였기 때문이다.
전준호 작가는 자기가 죽어 해골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고 이 작품을 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해골이전의 유년시절을 신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인생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건 숱한 역경을 거친 자의 특권이다. 그 점에서 전준호는 적격자다. 부산 영도 동삼동 달동네서 살았다. ‘푸세식’ 화장실 하나를 다섯 가구가 써야 했던 고단한 유년이었다. 원양어선을 탔던 아버지 얼굴은 아홉 살 때 처음 봤다. 부산 동의대 미대를 나왔지만, 졸업 후 작가로서 발 디딜 땅은 없었다.」 앞 조선일보 지면)
산자는(해골 되었을 때 뒤늦게서야) 살았을 때 온갖 경험을 반추(反芻)하려 하지 말고 지금 실존적으로 경험하고 인식해 두는 게 어떨까? 그리고 지금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 是는 따르고 非는 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저 해골로부터 당신의 삶이 진실 되었느냐는 도전적 질문을 받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하는 데에는 한 가지 방법은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기를 준비하는 것.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