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12장 1절부터 3절의 문학적 기교와 신학적 교훈-(1)
서 론
다니엘서 12장 1절부터 3절은 비록 짧지만 중요한 본문이다. 왜냐하면 다니엘서 전체의 구조 속에서 신학적 절정(climax) 부분이 될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에서 부활 사상에 관해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본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구약성서 본문을 문학적인 방법들을 통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이 본문은 다양하고도 뛰어난 문학적, 수사학적 기교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다니엘서 12장 1절부터 3절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한 문학적 기교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근거로 하여 구축할 수 있는 신학적 교훈들을 제시하는 것을 이 연구의 기본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 그리하여 구약성서 본문의 신학적 교훈들이 본문 자체의 문학적 요소들에 관한 연구들을 통해서 충분히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의 설교자들이 설교를 준비하려 할 때에 본문의 신학적 교훈들과 본문의 문학적 기교 연구와 아울러 그것들에 근거한 설교의 전달 방식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I. 다니엘서 연구사
다니엘서는 “수많은 논쟁의 원천이 되어 왔는데, 특히 그 역사성과 예언에 대한 해석의 경우가 그러하다.” 다니엘서의 역사성에 관한 논쟁은 다니엘서의 저자와 기록 연대에 관한 논쟁과 직결되는데, 주로 두 견해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다니엘서 전체가 주전 6세기에 활동했던 예언자 다니엘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전통적인 견해이다.
이 견해는 다니엘서 후반부(7:2, 4, 6, 28; 8:1, 15; 9:2; 10:2)에서 다니엘이 일인칭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과, 12장 4절에서 천사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라고 명령한 것에 근거한다(R. J. M. Gurney, B. K. Waltke, J. H. Walton, J. G. Baldwin, S. R. Miller).
그러나 다니엘서의 전반부에서 다니엘이 삼인칭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은 여러 학자들로 하여금 다니엘서가 다른 사람에 의해 최종적으로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게 만들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세기의 여러 역사비평학자들은 고대 근동 문헌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언의 보편적인 형식인 “사후 예언(事後 豫言, 즉 일어난 일을 목격하고 난 이후에 그 일을 예언적인 문체를 사용해서 기록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다니엘서 7장부터 소개되는 묵시적인 내용들이 기원전 6세기에 다니엘이 직접 기록한 작품이 아니고 기원전 2세기에, 안티오쿠스 4세(Antiochos IV)가 성전을 모독하고 난 후 164년 경에 죽기 전 시기에 어떤 유대인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O. Eissfeldt, A. Jeffery, Paul L. Redditt).
필자는 이 글에서 다니엘서의 저자에 관한 논쟁에 뒤늦게 동참하고 싶은 의도는 없다.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주석서들을 통해서 양측의 입장들과 증거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볼드윈(Baldwin)과 롱맨(Longman)의 주장처럼 기원전 6세기에 전해진 다니엘의 직접적인 예언이 “압축적인 성격”을 띄고 있어서 가까운 미래에 단회적으로 성취될 뿐만 아니라 보다 먼 미래의 다른 시대까지도 다시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본다.
예언의 궁극적인 주체가 하나님의 성령이요 그분이 역사의 주권자이시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면, 기원전 6세기의 예언이 기원전 2세기의 역사까지도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다고 해서 그 예언을 사후 예언으로 간주해야 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본다.
복음주의적 구약학자들 중에는 다니엘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으면서 다니엘보다 더 오래 살았던 동료들이 기원전 6세기 말에 다니엘서 전반부나 전체를 문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통일성 있게 편집했을 수도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Andrew E. Hill, R. Beckwith, Tremper Longman III).
다니엘서를 해석해온 방법들 중에 주된 것들은 역사비평적 방법과 종말론적 방법들이 있다. 전자는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것처럼 다니엘서의 저자나 편집 시기에 관해 찾아내려는 목적 하에 본문에서 암시되고 있는 객관적인 역사를 재구축하려 했다.
그런가 하면 후자는 세대주의자들(미래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인간 역사의 종말에 이루어질 사건들을 시대적으로 분류하려는 목적 하에 시도되었다. 이 일을 위해 세대주의자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연관성을 논의한 후에 다니엘서가 기원전 2세기에 일어난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에 이루어질 일들을 예견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필자는 다니엘서의 해석 방법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지배적이었던 방법들을 떠나 전혀 새로운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다니엘서 12:1~3을 연구하려 한다. 그리하여 본문에 대한 문학적 연구들을 통해서 신학적 교훈들과 감동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고, 이러한 방법이야말로 다른 어떤 방법들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II. 다니엘서 12:1~3의 사회적 상황
다니엘서의 저자를 기원전 6세기의 다니엘 자신으로 보는 복음주의자들이든 다니엘서의 편집자를 기원전 2세기의 유대인 지도자로 간주하는 역사비평학자이든 공히 인정하는 것은 다니엘서 12장 1절부터 3절의 사회적 상황이 기원전 2세기에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인들을 신앙적, 정치적으로 억압할 때라는 점이다.
이 점은 12장 1절의 “그 때에”라는 구절이 11장 36절의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와 40절의 “마지막 때에”와 연계되고 있다고 볼 때 더욱 신빙성이 있다.
그러므로 11장에서 소개되는 마지막 때, 즉 “하나님의 진노가 끝날 때까지”는 안티오쿠스 4세가 유다를 비롯한 피지배 민족을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억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신격화시키며 기원전 169년에 유다의 제사 풍습을 제거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황폐화시키고, 167년에 성전 안에 제우스 신의 제단을 세우기까지 한 때로 볼 수 있다(11장 31절은 이것을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형원 교수
침신대 신학과(구약학)
대학원장,
대전중문교회 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