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말기 암환자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고통이다. 말기 암환자의 약 90%가 고통을 호소하며 이 가운데서 절반정도 환자가 겪는 고통의 정도는 치통 또는 그 이상 정도의 고통이며, 약 25-30% 환자는 거의 산모의 산통에 버금할 정도 또는 그 이상의 고통을 경험한다.
심한 통증은 환자의 본래 인격을 파괴하기까지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즉, ‘의학적인 치료에 환자의 병세가 더 이상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점차 악화되어 가까운 시일 내에 임종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의 환자에게 통증관리를 포함한 신체적, 실존적, 심리정서적, 그리고 영적 영역에 대한 조력과 완화를 목적으로 제공되는 돌봄’이 완화돌봄이다.
완화돌봄의 주된 대상은 대체로 다음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임종 전 수개월 또는 수주 전까지 비교적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는 환자이다.
둘째는 급작스러운 사망에 이를지 모를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만성적인 장기부전 환자의이다.
셋째는 대부분의 병약한 노인들에 해당되는 꾸준히 진행되는 오랜 시간에 걸친 기능약화 환자이다. 일반적인 완화돌봄의 개입 단계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즉, 가정에서 간병인의 도옴을 받는 외래돌봄부터 시작하여 요양병원으로 대표되는 기관돌봄 그리고 호스피스돌봄의 과정을 거치면서 완화돌봄이 제공된다. 따라서 완화돌봄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외래 완화돌봄’, ‘입원 완화돌봄’, 그리고 ‘호스피스돌봄’의 단계로 나뉘어서 행해진다.
2. 목회상담적 의미
1) 신앙적 선택으로써의 완화돌봄
일반적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인생과 자기를 둘러싼 세계 및 미래를 포함한 전인적인 영역에서의 변화와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즉, 죽음을 눈앞에 둔 당사자는 신체적 고통과 함께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일어난 불치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분노하거나 질병의 원인을 자신의 죄로 돌리며 죄책감을 느끼는 등의 영적 고통과 아울러 경제적 불안과 관계적 단절에 대한 두려움과 아쉬움의 사회적 고통, 자신의 무능력감과 삶의 무의미함 같은 실존적 고통, 그리고 친밀한 이들과의 관계적 단절과 정서적 고통 등에 노출된다. 이 때 불치병을 앓는 당사자는 선택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 때 어떤 이들은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즉, 흔히 말하는 존엄사(death with dignity)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으며 어떤 이들은 비록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한 삶의 분량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기독교 신앙의 측면에서 존엄사는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선택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인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다(신 32:39; 시 139:16; 엡1:11). 안락사나 존엄사라 불리는 의사의 도움에 의한 자살은 명백히 이러한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동시에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왜곡하는 행위이다.
완화돌봄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는 죽을 수 있는 권리로써의 존엄사가 아니라,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질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돌봄방안이다. 이러한 점에서 완화돌봄은 장래의 소망이 없는 이들이 주장하는 존엄사 내지는 죽을 권리보다 나은 대안으로써 제시할 수 있는 신앙적 선택이 될 수 있다.
2) 적극적이며 생산적 돌봄으로써의 완화돌봄
완화돌봄을 선택하고 그 과정을 밟아가는 일련의 과정은 삶의 포기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간과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일은 아니다. 또한 완화돌봄은 단순히 사회적 필요나 경제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여 이루어지는 돌봄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질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돌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완화돌봄은 질병보다는 인간 자체의 가치와 존엄성에 중점을 두는 돌봄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죽음도 인간 삶의 한 부분이기에 그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역시도 삶의 질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불치병에 의해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신앙인으로써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한 이 땅에서 삶을 최선을 다해 의미 있게 마감하는 일이라 하겠다. 실제로 완화돌봄을 결정하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건강한 신앙인들은 여러 가지 실험적이고 힘든 치료과정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치유의 방법으로 믿고 최선을 다해 임하며 임상현장에서 비신앙보다 치료의 효과가 높은 것을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완화돌봄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앙적으로 돌봄을 받는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오히려 기대생존율에서 평균보다 훨씬 오래 생존하였으며 환자와 그 가족들이 느낀 삶의 질적 만족 역시 훨씬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완화돌봄이 삶의 포기나 현실에 대한 패배적이고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삶의 수용과 인간 존종과 사랑의 돌봄이라 할 수 있겠다.
시한부 환자 대부분은 육체적 고통이 경감되어 자신의 시간을 긍정적이며 의미 있는 곳이나 대상에게 사용하기를 원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다운 모습을 가능한 유지하려고 애쓰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평안하고 의미 있는 생의 종말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이런 점에서 완화돌봄은 삶의 추수기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 자신의 성취에 감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관점에서 생산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유용하다(고후 4:16).
양병모 교수
침신대 목회상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