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고통마저도 성서의 가르침은 개인이 겪는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에의 동참으로 보고 있으며(골1:24), 죽음은 영생의 과정의 필연적인 부분이라 여긴다(고전15:51~54). 그렇기에 신자들에게 있어서 삶에서의 고통과 죽음은 단순한 육체의 아픔과 소멸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의 여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십자가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발자취를 닮아가는 과정이며 성숙함과 성화(聖化)에 이르는 단계를 밟아가는 일이라 하겠다.
나아가서 완화돌봄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하나님과 사람에의 ‘의존’(dependence) 역시 부끄럽고 피해야 할 과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의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과정이며 완화돌봄과정에서 생기는 고통과 의존함과 불안과 두려움은 하나님을 포함한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만든다. 따라서 목회자는 효과적인 완화돌봄을 통하여 영적으로는 숙명적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가운데 섭리적이며, 자신과 하나님 모두와 평화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의 재해석을 통하여 의미를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반추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3) 목회상담 패러다임의 전환으로써의 완화돌봄
전통적으로 목회자의 돌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아우른다. 즉 목회상담은 ‘치유’(healing)와 ‘유지’(sustaining)와 ‘인도’(guiding)와 ‘화해’(reconciling)를 통하여 인간의 출생부터 임종까지의 전 인생여정에 개입하여 돌봄을 제공한다. 초기 교회시대부터 치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사역에서의 영향력은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치유가 가능한 영역이 있는 반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즉 회복되지 않은 영구적인 상실을 경험하는 불가역적인 영역 또한 존재한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가역적인 상실의 문제들에 대응할 가장 적합한 목회돌봄은 유지나 지탱의 돌봄이라 하겠다. 목회돌봄의 주요 기능 중의 하나로써 ‘유지’는 목회사역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중요한 돌봄 영역인 동시에 오늘날 한국사회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치유(healing)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치유에 대한 신자들의 기대와 관련하여 ‘가장 원하는 돌봄이 아니라 가장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오늘날 목회자가 새롭게 다시 이해해야 할 영역이다. 오늘날 웰빙과 함께 웰빙을 완성해 줄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는 데 따라 주목받고 있는 완화돌봄은 은연중 한국 교회 내에 만연되어 있는 치유중심의 목회돌봄 패러다임에서 오늘날 사회적 목회적 필요에 대응할 성서와 교회전통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중요한 또 하나의 목회돌봄 영역인 ‘유지’(sustaining)의 주요 실현방안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와 목회자는 사회적으로 완화돌봄에 대한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교회 전통에서 목회상담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해 온 유지기능을 재조명하여 치유지향적인 목회현장에서의 관심을 유지와 지탱의 패러다임으로 확장해 나가야 하겠다. 따라서 목회자들이 목회돌봄의 현장에서 치유패러다임과 함께 완화돌봄과 같은 유지 돌봄 패러다임의 중요성을 깨닫고 준비한다면 급격히 심화되고 있는 교회 안팎의 고령화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돌볼 수 있게 될 것이다.
III. 목회상담적 완화돌봄 대상 이해 및 방안 모색과 제안
모든 돌봄은 돌봄의 대상에 대한 이해가 우선하여야 그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완화돌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완화돌봄에서 적용될 수 있는 목회상담적 돌봄방안을 모색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완화돌봄의 대상이 되는 시한부환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 완화돌봄 대상의 이해
1) 완화돌봄 선택의 결정
완화돌봄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완화돌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첫 단계이다. 객관적 현실 앞에서 어느 선택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환자 본인의 선택이며 목회상담자는 이 선택을 존중하고 선택에 따른 돌봄을 제공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 본인에게 사실을 알려야 하는가의 여부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알릴 것인가가 고려되어야 한다.
완화돌봄의 수용 단계와 관련하여 목회자는 환자의 반응과 이후의 적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고려하여야 한다. 첫째는 나이이다. 나이에 따라 자신의 임종과 사망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어린아이의 자신의 죽음과 임종에 대한 인식과 성인이나 노인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다르다. 또한 나이에 따라 자신의 임종 상황에 대처하는 권한이 다르다. 둘째, 성별이다. 성별에 따라 임종 시의 관심의 영역이 다르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가족의 운명과 상황을 자신의 죽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남성은 자신의 가장으로서의 정체성과 관련 있는 이슈, 즉 자신이 죽고 난 후에 가족들의 경제적인 여유, 가족들을 부양할 충분한 여유가 있는가에 관심이 있으며, 직장과 일에 관련된 관심이 높다. 셋째, 대인관계이다. 일반적으로 대인관계가 활발하고 좋은 환자가 좀 더 오래 생존한다. 친구나 가족관계가 적은 사람은 비교적 단명하는 경향이 있다. 거꾸로, 스트레스를 더 많이 겪는 임종환자일수록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넷째, 질병의 종류와 치료여건과 환경이다. 질병의 종류에 따른 고통의 차이, 의료기관의 질과 특성에 따른 환자 돌봄의 차이, 사회경제적 여건, 혹은 환경에 따라 환자는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양병모 교수
침신대 목회상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