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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92)

바르실래의 노래

며칠 전 TV를 보다가 정말 봐서는 안 되는 장면을 보았다. 전라도 전주에서 새벽 5시쯤 산책을 가던 70세 노인을 20세 청년이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이다.

서로 길을 가다가 어깨가 조금 부딪쳤는데, 청년이 기분 나쁘다고 술김에 3분 이상이나 방어능력이 없는 어르신을 폭행한 것이다. 그 청년은 정말 비겁하다. 자신보다 확실하게 약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약자 앞에서 갑질하고, 조금 강한 사람 앞에서는 비굴해지는 사회는 저주 받은 사회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병든 영혼에서 비롯된다. 육신은 마음의 지배를 받고 마음은 영의 지배를 받는다. 성령을 거부하고 악령에 사로잡혀 살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패륜으로 치닫는다. 창궐하는 동성애의 패륜도, 별 거리낌도 없이 벌어지는 불륜도, 싸이코패쓰적인 묻지마 살인도, 부자관계를 망각한 경영권다툼도, 악랄하게 조교를 괴롭히는 어느 교수의 행패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빚어지고 있다. 기독교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든 악한 행동들 역시 그 근원이 악한 마귀의 영에 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성령으로 다시 회복되어야, 이 사회가 다시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으리라.

다윗왕의 시대를 살다간 바르실래의 일화는 패륜적 상황으로 인해 답답해하는 뭇 영혼들의 가슴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뚫어준다.


사무엘하 19장의 기록과 같이 바르실래는 다윗이 어려웠을 때 진심으로 돕고 섬긴 사람이다. 다윗이 압살롬의 패륜적인 반역을 피해 맨발로 왕궁을 빠져나와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 마하나임까지 피신했던 적이 있다. 아마 이 때가 다윗의 생애 중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때였을 것이다.

설상가상 의식주마저 변변치 못한 상태에서 큰 고통 받을 때에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왔다. 그리고 젠체하지 않았다. 바르실래의 품격 있는 삶과 행동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첫 번째로 바르실래의 신앙적 품격은 남을 도울 때 댓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운다는 사실은 매우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만약 반란군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삼족을 멸했을 것이다. 물론 내가 다윗을 돕다가 어떤 위해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까지 감당하리라하는 각오는 이미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다윗이 지금은 도망다니는 신세이지만, 언젠가는 예루살렘에 복귀해서 내게 한 자리 주겠지 하는 계산은 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바르실래의 신앙적 품격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객관적 판단력에서 찾을 수 있다. 바르실래는 그 당시 이미 80세에 이른 고령의 노인이었다. 반란을 진압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의 동행을 권했을 때 바르실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았다. 많은 나이에 다윗을 동행하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될 것이라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사무엘하19:35절에 기록된 그의 말 속에서 그의 냉철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믿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냉정한 절제의 지혜가 필요하다.

세 번째로 바르실래의 품격은 사양함에 있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는 자상함이 있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동냥은 거절해도 쪽박은 깨지말라하는 격언이 있다. 거절의 기술과 묘수가 필요한 시대이다. 바르실래는 다윗의 요청을 거절하면서도 납득할만한 대안을 제시했다. 여전히 다윗을 지지하고 있었지만, 보다 젊은 사람이 더 효율적으로 왕을 돕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자신의 수하 중에서 김함이라고 하는 젊고 유능한 인재 한 사람을 추천함으로써 다윗의 무안함을 상쇄시키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을 위해 헌신할 때는 모험이 따를 때가 많다. 때로는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결단과 의지가 있어야 부족하나마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

/노주하 목사 찬양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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