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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담배

군목 시절의 이야기다. 한 번은 동계종합훈련을 마치고 복귀했더니 인사과 사병계가 군종병 신병이 하나 왔다고 알려주었다. 부대가 훈련 중이어서 근무소대 내무반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지 궁금해서 내무반으로 찾아갔더니 신병답게 내무반 침상 끝에 차렷 자세로 앉아 있었다. 맞은 편 침상에 앉아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신병 뒤 침상 안쪽에 앉아 있던 상병 하나가 나를 보며 손을 가로로 마구 휘저으며 소리 없는 입모양으로 얘는 안 돼요라는 말을 인상을 쓰며 거듭 말하는 것이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병사마저 덩달아 같은 사인을 보냈다.


내무반에서 나온 다음 그 상병을 불러 군종병으로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 왈 제가요 이것저것 물어봤거든요. 그런데 애가 술 담배도 하고 순 날나리예요.”라는 것이었다. 그 신병은 술 담배를 해도 문제가 안 되는 학교 출신이었는데 그 상병은 술 담배를 하는 것을 보니 순 나이롱 신학생으로 보였던 모양이었고 그런 사람이 군종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상병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그 때 나는 술 담배 문제가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신실한 신자인지 나이롱 신자인지를 구분하는 잣대로 생각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꼈다.

어쨌든 타종교 신자도 군종병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미 훈련소에서 군종 주특기를 받고 온 병사를 특별한 과오도 없는데 술 담배 때문에 주특기 변경을 상신할 수도 없어 선임 군종병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대대로 내려 보냈다.


군대에서 경험한 술 담배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사단 수색대에 신병이 하나 들어왔다. 그도 역시 내무반에 군기 바짝 든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특박 나갔다가 며칠 만에 내무반 왕고참이 복귀했다. 당시 외박 복귀자는 소대원들에게 복귀 인사로 담배 한 개비씩을 돌리는 게 전통 같은 것이었단다. 그래서 그 왕고참 병장도 그렇게 했는데 마침 못 보던 신병이 앉아 있으니 잘해준답시고 담배를 입에 물려주며 피우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신병 왈 저는 기독교인이라 담배를 안 피웁니다.” 라고 했단다.

열 받은 병장 왈 기상. 좋아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것을 하면 인정해주지. 앞으로 취침!” 침상에 앉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 앞으로 취침을 하면 그 얼굴이 맞은 편 침상 모서리에 부딪히게 된다. 그때 그 신병은 과감하게 통나무처럼 앞으로 취침을 했고 그 순간 옆에 있던 병장이 모서리에 부딪히기 전에 받아냈다.


그 후 왕고참 병사는 내무반원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한다. “지금부터 이병(신병)의 모든 종교행사를 보장해주고 이후로 누구도 술 담배를 권하지 마라.” 그 병장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담배를 거부한 신병이 그야말로 진짜배기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 뒤 그 신병은 이등병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고 마침내 일병이 되었을 때 사단 군목의 눈에 띄어 사단 군종병으로 차출되었다. 그는 내가 부임했을 때 일병을 단 군종병이었다. 군대에서는 장교들의 회식이 자주 있다.

나도 가끔 참석하곤 했는데 나는 그래도 목사라고 술 대신 음료수를 권했다. 하지만 다른 장교들은 그 사람의 종교가 어떻든 모두 술을 마셨다. 아니 마셔야 했다. 회식 자리에선 반드시 상관이 부하들에게 술을 따라주는 순서가 있다.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배짱을 지닌 사람이 과연 있을까? 군대에서 직속상관은 평정이라는 인사고과를 하는데 그것은 진급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군대에서는 진급을 제 때 못하면 계급정년에 걸려 제대해야만 한다. 그러니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상관이 주는 술잔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짧은 군 생활이었지만 술잔을 거부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말이다. 지금은 군대가 어떤지 모르겠다. 이미 25년이 지났으니 말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신앙과 상관없이 술을 싫어했다. 술 먹고 주사가 심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군대 가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술 먹는 모습조차 보기 싫었었다. 심지어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마저도. 16살에 예수 믿은 나는 이미 12살에 술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담배는 식구들이 모두 다 냄새를 몹시 싫어했다. 아버지도 안 피우셨고 신앙과 상관없이 형제들도 아무도 안 피웠다.

그동안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술 담배 문제는 성결한 삶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여겨질 만큼 그 상징성이 지나칠 정도로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술 담배 문제는 진리나 거짓혹은 선과 악에 관한 측면보다는 건덕(建德)에 관련된 측면이 훨씬 강하다할 수 있을 것이다.


건덕은 문화적 요인이 강하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한국의 초기 교회에서는 남녀가 같이 예배드리는 것을 덕스럽지 못하게 여겼다. 그래서 자 예배당이 있었다. 또 옛날(?)에는 여자 신도가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것도 덕스럽지 못하게 여겨 강단에서 목사들이 나무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술 담배에 대한 신자들의 태도에 변화가 느껴진다. 방송에서 자기가 기독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이가 방송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술의 종류를 서슴없이 이야기 한다.


나는 술 때문에 일어나는 가정폭력과 같은 수많은 문제들을 볼 때 여전히 금주를 지지하지만 어쩌면 금주보다는 절주를 가르쳐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문 앞에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성우 목사 반조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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