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서의 삶과 죽음」의 저자 니엔 쳉(Nien Chens) 여사의 이 수기는 1986년 미국과 유럽의 베스트셀러(Best seller)였다.
1966년 8월 문화혁명 중 40여명의 홍위병에게 납치되어 투쟁위원회에 끌려가 정치범이 들어가는 제일감호소에 투옥되어 만 6년 세월을 보냈다. 죄목은 남편이 한 때 미국의 쉘(Shell)석유회사 직원이었다는 죄때문이었다.
음식은 죽조금과 짠채소였고 축축한 작은 감방에 더러운 냄새가 잦고 청소할 빗자루도 거절당했다. 어느 경우든 대처해온 경험으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 후 차츰 평온을 찾게 되었다.
먼지투성이 자그마한 창살 사이로 조그마한 파란 하늘이 보였는데 완두콩만한 거미가 계속 쇠창살 사이로 아래위로 넘나들며 드디어 거미줄을 짓고 있었다. 거미줄이 떨어지면 부지런히 넘나들며 쉬지 않고 보수공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큰 위로를 받고 거미와 친구가 되어 아침이면 “안녕, 거미야 잘 잤니?” 인사를 했다.
겨울이 가까이 오니 날씨가 추워지고 비바람이 불어와도 창문을 닫으면 거미가 죽을까봐 문을 닫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거미와 거미줄이 날아갔다. 자세히 방구석과 천장을 살피니 거미줄을 또 치고 있었다. “희망을 잃지 말자 망가지면 또 짓자!” 하나님께서 보낸 내일의 인도와 소망의 사자로 거미를 보고 인고했다. “내가 만일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계속 살아나기를 바라고 계셨다. 보내준 그 거미처럼 이제 나도 새 삶을 시작해야 됨을 알고 있습니다!”
40년전 긴급조치하에 8개월 옥고후, 이 글을 읽으면서 미물의 거미를 주님이 보낸 사자처럼 여기고 옥고를 승리했다면 우선 두 사람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먼저 30여년전 영국 런던 브릿지를 건너면서 안내자의 설명은 제이의 성경이라고 불리우리만큼 그 유명한 불후의 명작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의 저자 요한 번연(John Bunyan)이 투옥되어 수년간 고난 받았다는 감옥 건물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영에 속한 사람의 저자 워치만(Watchman Nee)는 기독교 신앙 때문에 1952년 투옥되어 1972년 5월 30일 소천 후에 옥사에서 감격스런 유서 쪽지가 침대 옆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래의 내용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대속물로 죽었고 3일만에 부활하신 기적은 우주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진리로 나는 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죽는다”
순교는 정말 어려운 시련이요 고통이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한 바울 사도는 예수를 만나 그 수 많은 고통과 환란을 이기고 죄수의 몸으로 목이 잘려 순교할 때까지 산순교의 고백을 우리는 읽는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이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에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2-28) 여기서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의 고백에 우리의 주목을 끈다.
빌립보 감옥에서 기적의 지진으로 풀려났으나 예루살렘에서 포박된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2년 투옥된 후 죄수가 되어 수년간 로마에서 감방살이로 결국 생의 최후를 맞았다. 그의 스승 예수는 단 하룻밤 감방에 구금된 후 이튿날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스데반 집사는 돌맹이세례 속에 순교했고 사도 야고보는 헤롯의 칼날에 목베임으로 간단히 순교했는데 바울의 일생은 날마다 죽는 산순교의 일생이었으니!
헤롯 대왕의 차자로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의 분봉왕 헤롯 안티바는 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아 사는 것이 마땅찮은 죄악임을 침례 요한이 지적한 결과 투옥시켰다. 메시야의 선구자며 엘리야로 오신 침례 요한은 결국 요녀 헤로디아의 딸의 춤바람에 녹아 침례 요한의 목을 소반에 담겨 최후를 맞게 된다. 여인이 낳은 사람 중에 침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예수님의 평가를 받은 의인이 오래동안 감옥살이 후에 최후는 당시나 오늘의 세상정치에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긴 죽음이었다. 그러기에 일찍 예수님은 헤롯 안티바를 향해 여우라고 지적했는데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눅13:32)고 말씀하셨다. 교활하고 방종에 빠진 헤롯의 최후는 유형(流刑)으로 끝맺고 만다.
구약의 요셉은 보디발의 종으로 충성했으나 무고하게 투옥되어 2년을 지내면서 충실하게 산 결과 죄수의 꿈해몽으로 그는 애굽왕 바로 앞에 서게 되고 꿈해몽으로 애굽의 총리에 오른다. 그의 세 번의 고난의 연속은 그를 높이게 했다. 다니엘은 사자굴 감옥에서 하룻밤을 지냈고 하나님은 사자의 입을 봉함으로 당대 체국 바벨론의 총리에 올랐다. 왕과 백성과 사회의 죄악을 질책을 하다가 유다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히고(렘32:2, 33:1 등) 여러 번 감옥살이를 하면서 회개를 외치다 결국 애굽에서 동족의 돌에 맞아 순교한 예레미야를 기억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전도로 수난을 받자 우선 베드로와 요한을 투옥하였으나 주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출옥시키고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행5:19) 그후 헤롯은 베드로를 투옥하고 엄격하게 세곳으로 군사들이 지켰으나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고 주의 사자가 나타나 쇠고랑을 풀고 옥문을 열어 감시한 군사들이 눈으로 못보게 하여 복음을 전한 기적을 본다(행12).
일본 제국주의 아래와 6.25 전란과 이북 공산주의 치하에 투옥되어 무서운 고통과 최후에 순교한 신앙의 선조들의 희생과 역사를 우리는 읽는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남기는가? 오늘 우리가 너무도 평온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므로 신앙의 선조들이 희생과 순교의 토양에 세워진 교회의 본질을 망각케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책해 보면서 바울 사도의 고백을 들어본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11~13)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