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자, 순자처럼 어느 나라나 흔한 이름이 있다. ‘마리아’는 유대사회에서 그렇게 흔한 이름이다. 산골처녀의 임신은 수치스런 일로서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했다. 당시사회에선 목숨을 담보한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에선 온 천사가 축가를 불렀을 것이다. 그녀가 잉태한 아기 예수는 인류역사를 B.C/A.D로 나뉘는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감격스런 마음으로 찬가(The Magnificat)를 불렀다. 내용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하나님이 어떻게 큰일을 행하실 것인가를 노래하고 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사역에 자신이 도구로 쓰여짐에 죽음도 사랑하는 이로부터의 버림받음도 각오했다. 소명(召命)은 생명보다 귀한 것이다. 주님이 쓰시겠다면 기꺼이 내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내 사사로운 감정과 이익을 주장하지 않는다. 나 같은 자가 주님께 쓰임 받는 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감격할 따름이다.
누가복음에만 있는 ‘마리아의 찬가’ 속에는 3가지 가장 반 복음적 존재가 무엇인지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자, 둘째는 권세있는 자, 셋째는 부자다(눅1:51-53).
사랑과 자비의 화신처럼 믿는 성모마리아가 메시야 아기예수를 잉태하고서 부르는 찬가 속에 그처럼 준엄한 사회-정치적 의식을 반영하는 내용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귀를 열고들을 필요가 있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자들’이란 하나님에 대하여 가장 많이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성직 사제들과 학자들, 자기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확신하는 땅위의 군주들. ‘권세있는 자’는 권력으로 언론을 장악하여 서민을 철저히 짓밟고 무시하는 힘 있는 자들. ‘부자’는 맘모니즘 숭배자로 무한탐욕에 빵과 심지어 순대까지 골목상권을 싹쓸이하는 대기업들이다.
아기 예수는 성모 마리아의 태중에만 잉태되고 탄생하는 것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맘속에 ‘성육신 사건’으로서 거듭나야 한다.
내 마음이 ‘말구유’가 되어 더럽고 초라하지만 가난한 심령으로 내 가정과 교회 안에 임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으로 잉태되면 우리도 마리아처럼 감격스런 찬양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오 거룩한 임마누엘, 메리 크리스마스!
김용혁 목사 / 대전노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