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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주류 종교개혁운동의 한계

구신약 성경(Old Testament and New Testament)에는 연속성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구신약 성경 66권은 하나님 자신과 인간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뜻의 계시이다. 구신약 전체 계시의 주제는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Agape) 혹은 구속(Redemption)이다.


구약과 신약의 저자는 공히 하나님이시고, 그 주인공은 공히 예수 그리스도시다. 구약은 오실 예수에 대하여, 신약은 오신 예수와 다시 오실 예수에 대하여 묘사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지상에 존재하게 될 교회를 염두에 두시고 그 교회를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통해 암시적으로 모형적으로 상징적으로 계시하셨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불연속성과 차별성도 존재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은 너무나 획기적이어서, 인류의 역사는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AD(Anno Domini,“ 주님 이후”)로 구분되었다.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에는 공의로운 해”(Sun of Righteousness, 4:2)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출 것이 예언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해와 같은 존재라면, 구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밤의 어두움을 밝히는 외등들과 같은 존재다. 둥글고 밝은 해가 떠올라 어두움을 몰아내면, 외등들은 비록 켜져 있어도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신약은 구약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불연속성과 차별성을 가진다.

따라서 성경해석자는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힘입어 신약적 관점에서 구약을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창을 통해서 기독론적인 구원사적 관점에서 구약을 보아야 구약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이단사설들과 성경해석의 오류가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신약의 산물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 성령님이 지상에 강림하심으로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탄생했다. 사도행전은 그 교회가 지상에서 발전되고 확산되어 간 초창기의 역사를 기록해 주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구약에는 교회가 없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의 설교 가운데광야교회”(7:38)라는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40년 동안 유리방황하며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공동체에 대하여 상징적인 의미로 그렇게 표현을 한것이지, 그것이 지상에 존재했던 신약성서적인 교회(New Testament Church)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교회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적인 권위를 갖는 책은 신약성경이다. 성경은 결코평평한 책”(Flat Book)이 아니다. 필자는 성경에는 수많은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최고의 봉우리는 요한복음 316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의 산물인 교회에 관한 이론(교회론, Ecclesiology)을 전개해 감에 있어서, 구약에 일차적인 비중을 두어서도 안 되고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에 지나치게 집착을 해서도 안된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구약의 할례가 신약에 와서 유아세례가 되었다는 신학(Theology of Infant Baptism)은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과 차별성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것이다. 또한 구약에서는 신정정치(Theocracy)에 의한 통치와 행정이 이루어졌었다. 이스라엘 민족공동체는 정치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종교공동체였다. 구약시대에는 정치와 종교가 두리뭉실 혼재해 있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영적인 공동체”(Spiritual Community of Believers)였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초창기 교회들은 세상과 세상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교회와 국가는 상호 무관하였고, 유아세례를 행하는 국교회(State Church)나 시교회(City Church)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유아세례 전통은 인간들이 고안해 낸 발명품(Human Invention)이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계시(Divine Revelation)가 아니었다. 그런데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전통을 끊어내지 못하였다. 오직 성경!”을 주창하면서도 그들은 구약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었고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과 차별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 하였다.


다섯째로,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즉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세계선교의 명령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실천이 부족했다. 그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1,000여년 이상 지배하고 있던 유럽 내의 지역(Land, Territory)과 주민들(Volk, People)을 자신들의 개혁사상에 입각한 지역과 주민들로 바꾸는 일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확보한 지역과 주민들에게 자신들이 주창한 개혁적인 신앙을 주입시키고 그것에 입각한 사회체제를 이루고 견고하게 지키는 일이었다.


그들은 시교 혹은 국교 형태의 기독교를 도모했기 때문에 세속권력과의 연계 속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기독교왕국 건설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이 일은 로마가톨릭 당국과의 영적, 정치적, 군사적 갈등과 투쟁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의 신학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28:18-20)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요 그것은 사도시대에 이미 성취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사도 바울이 그 당시 땅 끝으로 간주되던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유럽 밖에 살고 있던 잃어버려진 영혼들(LostSouls)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거나 없었다. 특히 루터와 깔뱅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 및 선택과 이중예정의 교리에 의하면, 영혼구원과 선교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부질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구원받을 자들을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을 해 놓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속>

김승진 교수 / 침신대역사신학(교회사), 신학연구소소장, 예사교회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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