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 또 자기의 원대로 자기의 마음대로 살고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 오열을 터뜨릴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뜻만을 푯대로 해서 쫓아가고 있는지? 하루를 계획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두고 생각하고 계획하는가? 매순간, 매시간 또는 매일매일 우리는 결단을 내릴 때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가? 오늘 이일을 먼저 하고, 저일을 나중에 할 것인가? 또 언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어떤 결단을 내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있는가? 육하원칙 보다 앞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어떤 표준에 의해서 그 많은 결정을 하고 있는가? 정말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결정하는가?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따라서 행동하는 일은 없는가? 가령 우리가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할 때, 기타 모든 선택에서 학생이라면 학교를 선택하고 학과를 선택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에도 주님의 뜻을 살피고 있는가?
예를들어 독신생활을 하는 것이 좋은가? 결혼하는 것이 좋은가? 대상자는 누구를 선택하는가? 이혼을 해야 되는가? 또는 재혼하는 것이 좋은가? 등과 같은 문제가 있을 때, 즉 삶의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확신한 다음에 진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생각과 사고방식으로 표준을 정해서 결정을 내려놓은 다음에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겐 예수님께서 우리의 신앙의 표본이고 모범이시기 때문에 주님은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사역을 통해서 그의 삶의 목적과 하나님의 뜻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예수님께서 자기 생애의 목적과 삶의 원칙을 말씀하셨는데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39)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고,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주님은 분명히 세상에 오신 목적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을 살피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요 근본이며 삶의 푯대이며 원리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이 불행한 여인을 전도해서 구원하신 다음에 제자들이 구해온 음식을 권했을 때에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드렸는가”(요4:33)라고 물었을 때, “너희들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지 않았느냐? 추수할 때가 되었으니 추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다.
예수님의 양식은 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온전히 이루는 이 것을 위해서 사신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복음사역을 시작하시고 한 번은 갈릴리의 어떤 집에서 말씀 하실 때에 그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예수님을 찾았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집을 나가신 다음에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친척들이 정말 예수가 미쳤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48~50)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기도문 중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가장 위대한 모범 기도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이다.
예수님은 이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본인이 직접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모본을 보이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십자가의 잔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이루어 지길 간절히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제쳐놓고 자기의 뜻을 관철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역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까지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소원하셨다. 하나님의뜻대로, 하나님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를 드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잘 감당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현장(Magna Charta)이라고 할 수 있는 산상보훈의 결론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요6:40)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다 이루셨겠는가? 예수님은 전생애를 통해 공생애 사역을 통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행하고 이뤄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원리요, 세상에 오신 전부였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살펴서 그 뜻대로 행하여야 주님의 제자요 하나님의 자녀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서는 직분을 따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8:5)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드려 선한 청지기직분을 수행하고 나아가 이방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해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여 저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요 소원이기에 최선을 다해 이루어 드릴 것이다.
한명국 목사 / 증경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