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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십일조 3,142,000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곳에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3:10)


목사님, 그간 한국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이상한 꾀임에 빠져 복덕방을 소개받아 한국에 땅을 사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땅값이 의심스러워요라고 교회에 나온지 한 달도 안된 김봉선 자매가 물었다. 저는 주일이라 식사하고 나오면서 들은 말이라서먼저 소개소에 찾아가 꼼꼼히 확인하시고 의심스러우면 다른 복덕방에 가서 재확인한 후에 연락해 주세요라고 했다.


이튿날 중국서 같이 온 이웃과 먼저 의논한 결과 사기꾼에 걸린 것 같아서 다시 찾으려니 돈은 이미 이상한 소개소에 넘어갔는데 안된다는 것이라 했다. 아내에게 잘 알아보라 해서 잘 아는 경찰관을 대동하고 3인이 함께 유령회사같은 소개소에 찾아가 마침 계약서 도장을 안찍은 상태라 즉시 현장에서 도로 찾아 본인 통장에 입금시켰다고 했다.


지난 추수감사 주일에 재무집사는 김 자매가 십일조를 300만원 넘게 내었다고 해서 금주에 교회 앞에 간증하도록 했다. “세상에 중국서 돈벌로 한국 와서 뼈빠지게 번 돈을 교회에다 십일조인지 헌금인지 말라꼬 바치노? 나는 안한다고 했는데, 하나님이요 아무래도 사기꾼에 걸린 내 돈 돌려주시면 내도 십일조를 꼭 바치겠심더! 간절히 기도했더니 정말로 도로 찾아 너무 감사해요!”부모가 일제때 만주 심양으로 간 경상도 사람이라 사투리로 간증한 내용요약이다. 저도 내 평생 십일조를 300만원도 내어본 일이 없는 것 같은데 교회출석 한달 만에 십일조를 300만원 낸 초신자 교인 앞에 부끄러움이 있었다.


주일 교회사역을 마치고 지하의 찬송소리에 들어가니 사모가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데 귀신이 발작하여 안나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찬송소리를 멈추게 하고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포악한 귀신아 당장 떠나가라!”했더니 소리를 그치고 뒤로 넘어졌다. 기도 후에 박봉선 자매는 밝은 모습으로 일어났다. 교회에 나와 사기 당한 돈 찾고 십일조 내고 귀신과 병 떠나가고 신앙찾고 뷔페식당에서 기도해준 성도들에게 저녁대접하고 웃음 찾아 귀가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14:20)

 

오상모 장노

오늘 아침 일찍 시외전화를 받았다. 대구 사시는 오상모 장노였다. 1960년 대학교 1학년때 지금 한남대학교 뒤쪽에 초대 산은 총제이셨던 배민수 박사를 소개받아 농민학원을 견학하고 가끔 가르침을 받던 중 경북 예천에서 온 오상모 청년과 사귀어 그 후 고향집에 데려가 농협에 취직시켜 농촌운동을 해온 오랜 친구의 음성이었다.

목사님, 명년의 소원기도는 천만원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이뤄질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의 은혜도 갚겠습니다!”라고 했다. 80이 넘어도 부부가 직장에 교대로 나가 건강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하면서 저의 주소까지 물었다.

내 평생 천 만원 십일조를 교회에 내어 본 일도 기도해 본 일이 없는데 큰 충격이었다. 저도 천 만원 십일조를 낼 수 있도록 나아가더 많은 선교헌금위해 기도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자손에게 기업으로 다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18:21)

 

이상근 목사

우리 침례교회에서는 그 당시 목사님들이 십일조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못 들었다. 1962년 한남대학교 3학년으로 종교(전도)부장이 되었을 때 마침 미국 달라스 침례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신 이상근 목사님의 소식을 듣고 교목 문창권 목사님께 의논하고 초청하여 학교 부흥회를 열었다.

고등학교 시절 대구 대봉동에서 하숙과 자취생활을 하면서 반월당 덕산 침례교회가 멀어서 수요일 저녁은 가까운 대봉교회에 나가 이상근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았었다.

첫날 낮 설교에서 그는 평북 정주 농부의 아들로 아버지가 준 돈이나 생긴 돈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십일조를 드리며 교회봉사를 하였는데 주님의 은혜로 선교사의 도움으로 진학하여 목사가 되고 미국유학까지 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대구 제일장로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고 간증했다.

저는 그때부터 십일조 생활이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는 축복을 받았다.

 

한학수 집사 십일조

뒷집 노집사는 예수를 10년 믿어도 지난주 추수감사절에 나락() 한 가마니 밖에 안내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예수 믿은 지 1년 밖에 안됐는데 한 가마니 내면 되지 예수 믿어도 남의 연례대로 믿으면 되지 왜 두 가마니를 낼려고 해요? 예수를 믿어도 분수대로 믿어야지! 머슴 새경, 비료값, 품삯 값 등을 빼고 나면 뭐나 남아 열두 식구가 먹고 살아요!”어머니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자 아버지는연례대로 남이 한 가마니 낸다고 우리도 남따라 낼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성경말씀대로 벼 20가마니 거두었으니 두 가 마니를 십일조로 내야 한다니까!”


방에서 듣고 있던 우리 형제는 아버지 말씀이 옳게 여겨 전번처럼 벼를 지게에게 싣고 일어나시는 아버지의 지게를 넘어뜨리지 못하게 나는 어머니의 두 손을 잡고 매달리고 동생은 어머니의 허리를 잡아 늘어져 아버지가 두 번째 벼 가마니를 지고 5분쯤 교회를 향하여 내려가신 뒤에 어머니를 풀어주었다. 이렇게 우리 집이 아버지의 훈도대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축복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백만장자 하이드의 십일조

하이드(A. A. Hide) 성도가 빚더미 속에서 십일조를 계속 드리는 것을 보고당신은 빚은 안 갚고 십일조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물었더니, 하이드 성도는하나님의 빚을 먼저 갚아야 내 빚도 갚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의 빚을 갚을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고만 계실까? 세월이 흘러 마침내 그는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늘 이뤄지기 마련이다.

 

억만장자 록펠러의 십일조

24개 대학을 세우고 4,928교회당을 지어 헌납한 록펠러의 그의 나이 76세 때 기자들이 어떻게 세계 제일의 재벌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어머니께서 세 가지 신앙의 유산을 주신 것을 말하였다고 한다. 첫째는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것이었다. 그는 수입이 20센트뿐일 때부터 십일조를 시작했다.

둘째는 예배드릴 때 어머니와 40분 전에 교회에 도착하여 앞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셋째는 교회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해 온 것이었다. 그는 이세가지 신앙의 유산을 잘 지킨 것이 자신이 재벌이 된 이유라 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23)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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