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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

예전에 어떤 분이 심방의 유래에 대해 쓴 글을 본적이 있다. 그는 심방 그 중에서도 대심방은 한국교회에만 있는 현상이라며 그 유래가 옛날부터 있었던 무속풍습으로 지역 무당이 자신과 신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당골 : 단골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들을 봄과 가을에 방문하여 기복을 위한 작은 치성을 드리는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있고 합리적인지는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는 대심방이 너무 기복적으로 흐르는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그러한 주장을 한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목회자의 심방(성도의 수가 많은 교회는 대심방)은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권면하고 축복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성도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회가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고 중요하다 할 것이다.


부교역자 시절 봄철 대심방 때가 되면 정말 바빴. 워낙 큰 교회라 부교역자들이 나누어서 심방을 해도 몇 달이 걸리곤 했었다.교인 집들 사이도 거리가 멀어 차로 이동을 해야 되는 경우가 많았고 하루에 방문해야 할 가정도 열이 넘었다. 그러다보니 집에 들어가자마자 담당 전도사가 전해주는 정보를 가지고 간단한 권면과 기도를 해주고 바로 일어나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권면과 축복도 잘 알지 못한 채로 했으니 이해와 공감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

마치 그냥 형식적으로 연례행사를 치르는 듯이 했었던 것 같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었지만 그게 최선은 아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군목으로 있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씩 해안 철책에서 야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들을 방문하곤 했었다. 일종의 심방이었던 셈이다. 추운 겨울날에는 두껍게 입은 군복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밤새 보초를 서는 병사들을 찾아가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따라주고, 여름에는 모기떼와 싸우는 그들과 잠시라도 함께 있으며 많은 이야기 때로는 속 깊은 대화도 나누고 어려움도 살필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대학에 들어가 그야말로 세상 경험이 없는 내게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믿음의 형제들의 어려움과 고민, 그리고 믿음 밖에 있는 젊은이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나와 함께 다니던 군종병 형제는 머리 희끗한 목사가 된 지금도 그 때를 그리워하며 그 때처럼 하란다면 지금 다시 하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내게 그 때 그 심방은 행복한 기억이다.


지금은 늙은 사람이 많아져서 전보다는 줄었지만 비닐하우스 농사는 우리 동네에서 중요한 농사분야다. 그런데 겨울이 되어 비닐하우스 농사철이되면 비닐하우스 농사짓는 성도들을 낮에 집에서는 만날 수가 없어 들로 나가 그 분들의 비닐하우스를 찾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비닐하우스로 심방을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비닐하우스로 심방 갔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 때가 2월경이라 아직 추워서 밤에는 비

닐을 5중으로 치고 낮에는 걷고 일을 했다. 내가 간곳은 집사님 부부가 농사짓고 있는 오이 하우스였

. 하우스에 들어 선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하우스 안이 마치 습식 사우나 같았던

것이었다. 오이는 수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라 바닥이 질척일 정도로 물을 많이 주는 탓이었던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난 집사님 부부는 모두 내복을작업복으로 입고 있었고 그분들의 머리카락과 옷

들은 마치 물속에서 막 나온 것 같았다.

그분들의말에 의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짜 입으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든 기간은 두어 달 정도라지만 나는 잠깐도 견디기 어려운 것을 날마다 하루 종일 견디며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에서 깔끔한 모습으로 예배드리는 모습만 보아왔던 내게 두 분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분들이 왜 가끔씩 저녁예배에 빠지는지, 왜 예배시간에 가끔씩 조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비닐하우스 심방을 하고부터는 그 분들이 가져오는 첫 열매에 담긴 땀방울을 알기에 마음을 쏟아

축복하게 되었고 먹으라고 가져다주시는 토마토며 오이가 정말 귀하고 감사했다.


어느 여름 날 저녁 무렵 문득 마음이 일어나 마을을 거닐다가 혼자 사는 집사님 집에 들어갔다.

계획에 없던 심방을 하게 된 것이다. 마침 집사님은 저녁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는지 상을 차리고 있었

. 다른 때 같았으면 실례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나왔을 텐데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아 집안으로 들

어갔다. “아유! 집사님 식사하려던 참인가 보네?” 입맛이 없어 시래기죽을 끓여봤슈.”그 때 나도 모르게이말이튀어나왔다.“ 저도한그릇주실래?”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집사님은 곧 미소를 지으면서그래유. 한 그릇 잡숴봐유. 별 맛은 없지만 오랜만에 먹으면 별미지유.”


나는 집사님과 소반에 마주 앉아 죽 한 그릇을 맛있게 먹었다. 려한 맛은 아니지만 된장시래기죽은 집사님의 미소처럼 구수했고, 덕분에 죽 한 그릇을 다 먹었다고 하시며 활짝 웃으시는 집사님의 웃음이 나를 배부르게 했다. 이십여 년 동안 목회하며 몇 안 되는 교인이기에 그것도 좁은 한 동네 사는 교인들이기에 이제는 안가 봐도 다 알 것 같지만 심방은 성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여전히 유효하다.

고성우 목사 / 반조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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