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발리에서 생긴 일

박종화 목사

발리는 5년 전 대학교 졸업여행에 초대받아 학생들과 함께 했던 여행지다. 관광버스는 아융강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 안에는 은행장 부부가 있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 말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사회복지학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이 믿음에 대한 결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내게 부탁을 했다. 머뭇거리는 은행장에게 오늘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나머지는 무엇이 되겠냐고 도전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성령의 은혜로 믿음에 대한 결단을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한국어를 하는 현지인 가이드에게 복음에 대하여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생들로부터 사전에 복음에 대하여 설명을 들은 터라 간략하게 묻는 질문들에 가이드는 믿음을 고백했고 나는 그가 그리스도인이 됐음을 선포했다. 아융강은 래프팅을 하러 가는 장소였지만 이들에게는 침례를 받는 장소가 됐다. 폭포가 있는 강 앞에 이르러 침례에 대하여 설명을 하자 두 명이 세례는 받았지만 믿음이 불분명해 침례를 받고 새롭게 믿음생활을 시작하고 싶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다섯 명에게 침례를 줬다. 전 날에 비가 많이 온 탓에 20미터 되는 협곡을 지나는 강물위로 흙더미와 커다란 나무가 쏟아졌는데 공교롭게도 은행장이 탄 배를 덮쳤다. 그 배의 가이드는 흙더미에 깔려 물속으로 쳐 박혔고 나무는 은행장 부부 사이로 떨어졌다. 다행히 가이드는 대퇴부에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고 은행장 부부는 무사했다.


한 시간 전 네 영혼을 하나님이 부르시면 무엇이 되겠느냐는 말이 상기되며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믿음의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우신 주님께 감사했다. 여행 후 현지 한국인 선교사를 찾아 가이드를 현지인 교회로 안내했다. 은퇴한 은행장은 자신들의 집 근처 교회에 등록하여 매년 선교지를 찾아 열심히 선교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발리의 아름다운 풍광처럼 은혜가 있었던 이곳에 가족과 함께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올해 가족여행은 이미 다녀온 터라 딸과의 여행을 제안했고 딸은 흔쾌히 승낙해 드디어 부녀가 발리에 다시 오게 됐다. 먼저 항공권을 끊고 호텔을 예약했다. 9박 11일 중 중간의 3박 4일은 시골에서 보내게 됐다. 꼭 해야 할 것으로 정했던 래프팅과 코끼리 사파리를 마치고 시골에 있는 빌라로 들어갔다. 딸의 불평이 쏟아졌다. 시골에서는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란 말로 위로를 하였지만 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식사로 아메리칸식을 택한 딸은 세 쪽의 식빵가운데 하나를 맛있게 해치웠다. 두 번째를 먹으려던 순간 식빵 테두리에 녹색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직원을 불러 사실을 알리자 빵을 바꾸어 와서 테두리만 썰어내면 안에 것은 먹어도 된다고 한다.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다. 이미 한 개를 다 먹었다고 항의하자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당황하는 직원이 안쓰러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식사 전에 걷기 싫어하는 딸을 두고 나만 시골길을 걷기로 약속이 된 터라 딸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곧바로 배낭을 메고 시골길을 걷기 시작했다. 날은 덥고 태양은 뜨겁다. 흐르는 땀에 노폐물이 배출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빌라에 돌아오자 딸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곰팡이가 핀 빵을 먹은 것은 난데 왜 아빠가 괜찮다고 해요?” 그 말이 맞는 말이었기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직접 사과를 받고 싶어했기에 매니저가 직접 딸에게 사과해 달라고 프런트에 부탁을 했다. 아침 이후 딸은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이윽고 오후에는 설사를 하였다. 그러나 저녁이 되도록 사과에 대한 소식이 없자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프런트에 갔더니 매니저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알리고 딸을 불러냈다. 딸은 분노의 감정을 터뜨렸다. 완벽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곰팡이가 있는 빵을 먹었고 배가 아팠으며, 화가 나서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설사까지 했다고 항의했다. 매니저는 사과대신 원하는 것이 뭐냐며 되물었다. 진정한 사과를 원했는데 오히려 원하는 것이 뭐냐는 물음에 딸은 모두 환불해 줄 것과 다른 호텔로 즉시 바꿔 달라 요청했다.


다른 호텔로 바꾸는 비용을 낼 수는 없지만 모두 환불 처리하는 조건으로 합의가 됐다. 딸은 자신이 이렇게 화를 낼 줄 몰랐다며 그러나 마음은 시원하다고 한다. 과거 학교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했던 딸이었기에 그 후 분명한 자아경계선을 확립할 수 있도록 치유하며 도왔던 터라 그 결실을 보는 것 같아 기뻤다.
그날 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나눴다.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 중에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와 그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냈을 때에 다시 느끼게 되는 감정에 대해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에 레스토랑의 직원이 받게 될 일들은 무엇일까 물어봤다. 그 직원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딸은 분노를 터뜨리게 될 때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봐야 되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분노를 무조건 억누르는 것은 좋지 않다. 분노의 감정에 대한 주인은 자신이며 그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한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가장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이 돼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나눴다.


다음날 매니저는 말을 바꾸어 아침 식대만을 환불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제 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내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딸이 말한다. “아빠, 이 일을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아요.”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