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6:3)
오래전에 읽은 “야테스의 물웅덩이”를 새해가 들어 더욱 뼈저리게 느낌이 왔다. 사람이 우선 알지 못해서 주님의 축복을 만끽하지 못한다. 알지 못해서 청춘을 허비하고 노경에 쓸쓸하게 사는 것을 특히 노숙자들 전도에서 발견한다. 부산 주님의 교회의 실버모임에서 설교를 하면서도 더욱 깨닫게 되었다. 2~300여명의 노인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교통없이 살아온 그들은 마치 야테스의 후예와 다름이 없었다.
“야테스 물 웅덩이”(Yates Pool)는 미국에서 유명한 석유매장지로 알려졌다. 야테스 씨가 소유한 목장으로 저당권을 설정하고 원금과 이자를 갚기에 힘들었고 목장에서 나오는 작은 돈으로 옷가지나 식료품을 사기도 어려워서 가족생계는 국가보조금으로 지탱했다.
한번은 석유회사로부터 지질조사단이 그 지역으로 와서 야테스 씨에게 그의 땅에 석유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시굴정(Wildcat well)을 파는 허가를 요청했고 야테스 씨는 임차권에 서명했다. 탐사 결과 400m두께의 지층에 석유가 매장된 것이 발견되었고 시굴정에서는 하루에 8만 배럴(barrel)이 쏟아졌고, 다른 시굴정에선 갑절이나 퍼내었다. 발견 후 30년에 정부조사단은 시굴정 중에 한 곳에서만 매일 125,000배럴을 생산할 수 있음을 알아내었다.
그런데 야테스 씨는 그 엄청난 석유 매장량의 임자로, 그날부터 그는 그 놀라운 매장량과 광맥 권리를 가진 땅을 취득권은 있었으나 여전히 정부구제금에 의존해 사는 억만장자의 가난뱅이로 남았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그는 자기 목장에 석유가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땅의 등기는 자기 앞으로 되어 있었으나 석유는 실제로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양자(롬8:15)가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1:12)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재원이 우리에게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으로 즐겁고 승리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우리 안에 함께 계신 성령의 인격 안에서 우리의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한 말씀과 성령의 재원을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영적 궁핍속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이미 그들의 것이 된 엄청난 부와 재원들을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테스 씨와 같이 석유광은 자기 앞으로 되어 있으나 석유의 무진장한 부요는 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속에는 32,500여 가지의 축복의 말씀이 있는데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 예배하러 갈 때나 성경을 들고 다니는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야테스 씨와 무엇이 다를까? 세상도 변하고, 기후도 변하고, 역사도 변하고, 모든 인생도 변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1:24~25)
하나님의 복된 약속의 말씀이 은행장이 발행한 수표보다 못할까? 수표는 현금으로 바꾸어 사용하지 않으면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더 이상 억만장자가 어리석은 가난뱅이로 살 수 없다는 결단을 내린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여 무진장의 응답과 축복을 받게 되길 소망한다.
뒤돌아보면 야테스 씨와 같은 삶의 유형에 저도 들어가지 않은가 생각게 된다.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믿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아무런 유익이나 열매가 없다. 사람들에게 무시와 경멸을 받아도 때로는 높은 칭찬과 갈채를 받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대학교 시절에 구약성경을 가르치신 김기수 교수(Dr. Crim)가 성경말씀으로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아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그러나 너의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렘45:5) 가끔 강조한 것처럼 우리는 아무리 놀랍고 성공적인 업적을 남겨도 우리는 자신을 위한 사역이 되어선 안된다.
40여 년 전 긴급조치하에 만난 세 사람이 기억난다. 접견대기실에서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나는 함께 기다리는 세 사람에게 짧은 시간이나마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졌다. 먼저 대기 중인 셋은 대화가 무르익어 있었다.
첫째, 전씨는 6·25 전쟁에 종군하여 인민군 포로로 북송 중 하얼빈까지 도망쳐서 연명하고 남하하여 조국의 품에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1974년 3월 긴급조치 하에 간첩단 사건으로 중정을 거쳐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출정 때나 운동시간에 만날때마다 복음을 전했다. 또 1심 후에는 가끔 내게 넣어주는 소고기 사식을 먹지 않고 “소지”(교도소 안에 심부름과 청소를 하는 소년범)를 시켜 그에게 넣어주기도 했다. 그는 이런 친절 때문에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 그 후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전해들었다.
둘째, 또 한 사람은 박 씨였다. 그는 그동안 자기들끼리 장황하게 늘어 놓는 전씨의 말을 듣고 “아무렴, 이왕 할 판이면 크게 해 먹어야지!”라고 말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1974년 당시 73억 은행 돈을 꿀꺽 삼킨 그 은행장의 횡령사건은 서울 은행가의 지축을 흔든 대사건이었다. 인물도 좋고 인상이 좋아 훌륭한 사람으로 보았으나 그의 마음은 황금의 노예로 전락하여 나의 전도를 잠깐 듣더니 아랑곳하지 않고 전 씨에게 말머리를 바꾸었다. 나중에 들으니, 출감하여 밍크 옷 수출입 장사를 하다가 방안에서 가룟 유다처럼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 들었다.
셋째, 나는 옆에 앉은 눈망울이 또렷한 한복 차림의 죄수와 인사를 나누고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김씨라는 그 사람은 나를 노려보며 차분히 달려들었다. 그는 일본 동경대학교 교수였는데, 서울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와서 공산주의 선전 강의를 하다가 반공법, 보안법에 걸려 1심에서 15년 고법에서 12년 선고를 받고 대법에 상고 중이라고 했다. “목사님, 나는 공산주의자로 칼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따라 사는데, 당신은 당신이 신봉하는 예수님과 같이 살고 있소?”라고 되물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 말은 나의 폐부를 찔러 일침을 가하는 말이었다.
“김 선생, 선생께서 공산주의 사상대로 살고 계시다니 그것이 어떤 삶인지는 모르겠으나, 왜 상소를 해 감형을 받으려고 합니까? 떳떳하게 15년을 사시지!”라고 대꾸를 했다. “사실 나는 목사가 되었지만 예수님처럼 살려고 힘쓰나 그렇게는 못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통해 바울 사도와 열두 제자 및 성 프란시스, 성 다미엔, 인도의 선다 싱이나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꼬(하천풍언), 그리고 한국의 손양원, 주기철 목사와 같은 분이나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천 수만의 성도들이 있소. 김 선생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십시오!” 그 후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 천국에서도 못 만날 것인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한명국 목사 /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