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는 40여 년간 중생을 제도했으나 “자기와 인연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의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보응을 받아야지 용서받을 길은 없다.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 등 삼세를 구원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예수님은 개인전도를 많이 하셨고, 12제자, 70문도, 다락방의 120명 제자, 승천시의 500문도, 4,000명과 5,000명에게 떡 먹이고 설교, 어떤 때는 무리 수만 명이 따라 다녀 밟힐 만큼 되기도 했으나 다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제자들은 다 달아나고 사도 요한만 십자가의 골고다 동산까지 따라왔었다.
오순절 후에 베드로의 설교에 한번은 3,000명 다음은 5,000명이 결신하는 열매를 보였다. 목회를 시작한지 53년에 접어드는데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전도했고 복음을 여러 가지로 전했는데 한 사람의 생명이 고귀한 것을 깨달은 사건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죽을 줄도 모르고 물에 빠진 초등학생을 구하려고 얼음물에 뛰어들었던 그 때가 일평생 뼈저리게 잊혀지지 않는 절박한 체험교훈을 되새겨 본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한영혼의 구령
우주에서 내려다 볼 때 지구라는 조그만 위성에 65억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살아가고 있다. 마치 우리가 개미집을 흩어놓고 쏟아져 나오는 개미떼를 보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1
30여회 해외선교여행이나 침례교 세계연맹 국제회의에 참석하다 보니 100여 개국을 잠깐이나마 둘러본 셈이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각각의 환경에서 특이한 문명과 문화, 풍습과 전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았고, 특별히 저들의 고귀한 영혼이 쓰레기처럼 버려진 채 영원한 검은 장막 속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볼 때마다 눈물겹고 가련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사람은 무엇엔가 관심을 갖고 살아간다. 구두 닦는 소년은 사람들의 신발에, 도적은 돈 보따리에, 처녀는 총각에, 총각은 처녀에, 군인은 계급장에, 입후보자는 사람이 모두 표로 보이고, 차장 아가씨는 사람이 돈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목사나 성도들은 마땅히 사람으로 보기에 앞서 그 영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병들고 상처받고 파괴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나 속 영혼은 지옥의 심판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죽을 줄도 모르고
“사람 살려유!” “학교 갔다 오던 아이가 연못에 빠졌대유!” “누가 나와서 도와줘유!”
노모와 함께 홍도동 언덕배기에 전세를 얻어 공부하는 대학 후배 이흥관 군의 집에 모처럼 놀러 갔다가, 이웃 아주머니의 애타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홍도동 연못가로 급히 달려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백 명이 못 둑과 길가에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으며 못 둑 한복판에 이르니 어떤 어른이 연못가에 옷을 적신채로 서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얼음을 깨고 못 한복판 아이가 빠진 곳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못 물이 깊고 얼음이 두꺼워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직감적으로 신과 윗도리를 벗고 내복과 바지를 입은 채로 즉시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니 이흥관 군은 극구 말렸다. “한 형, 얼음 찬 물에 어쩔라고 들어가유? 큰일 나유”, “아이가 연못 속에 빠져 죽어 가는데 어쨌든 살려놓고 볼 것이지! 난 수영도 잘하니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죽은 사람 살리려다 정말 산 사람 죽을 뻔한 경험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군은 정작 사려 깊은 데가 있었다.
현장을 살펴보니 얼음을 때던 각목이 있어 나는 수영을 하면서 각목으로 얼음을 깼다. 또 각목을 높이 들어 얼음을 때고 계속해서 연못 한복판으로 30미터 이상 헤엄쳐 들어가니 얼음이 동그랗게 깨어지면서 아이가 빠진 곳이 나타났다. 2미터 쯤 잠수를 하여 내려가 가만히 살펴보니 아이가 물에 빠진 채로 앉아 있었다. 그의 목덜미를 챙겨 잡아 연못 바닥을 발로 차면서 뜨니 물의 부력 때문에 가볍게 올라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닦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얗게 질려 죽은 것 같았다. 나는 살려보려는 마음으로 그를 잡아 등에 업고 못가로 헤엄쳐 나왔다. 연못가에 나오자 둘러선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이를 가족에게 인계해 주고 못 밖으로 나오니 정신이 가물가물하고 몸이 새파랗게 변했다.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을 정도로 굳었다. 이 군의 노모께서 나를 연탄불에 가까운 아랫목에 눕히고 이불과 요를 있는 데로 덮어 주셨는데도 몸이 얼마나 떨리던지, 나는 무거운 이불을 높이 들썩거리다가 이윽고 잠이 들었다.
얼마 후 깨어나 물으니, 홍도동 초등학교 5학년인 그 아이는 이미 죽었고 침례교 선교부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과부 집사의 아들이라고 했다. 죽은 아이와 여동생 그리고 친구, 세 아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연못에서 미끄럼을 타면서 집으로 오던 중 얼음이 얇은 한복판에 그는 빠지고 두 아이는 급히 밖으로 나와 살았다고 했다.
우리는 그 집으로 찾아가 시신 앞에서 기도해 줬고,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그러니까 1961년 2월 어느 오후로 기억된다. 뒤에 들으니, ‘용감한 대학생’의 익사 어린이 구명 기사가 대전일보 전면 박스 속에 났다는 소리를 내가 다니던 대흥교회 교인들에게 들었다.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눅13:15)
“너희 중에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끌어내지 않겠느냐?”(눅14:5)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마12:11)
어찌 사람이 소, 나귀, 양 한 마리보다 못하겠는가. 예수님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 사람이라 하셨는데….
/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