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시장님, 외람되지만 한 가지 질문 드려도 될까요?” “목사님, 말씀하세요.” “앞으로 30년 또는 50년, 100년 후를 내다보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최우선 시정은 무엇일까요?” 1990년 제16차 침례교 세계대회를 1905년 첫 번 대회 이래 가장 성황리에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치루고 잘 협조해 주신 고건 시장에게 감사인사로 오찬을 초대했다.
준비위원장 김장환 목사, 준비총무 노창우 목사 및 부위원장 한명국 목사가 참석해 90년 9월에 담소를 나눈 자리였다. “목사님, 서울시정에 산적된 일이 너무 많아서 딱 꼬집어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미국은 이미 한집에 차량이 평균 2대라고 들었어요.
예를 들면 당시 LA 도시계획을 할 때 100년 이후를 생각하고 설계했지만 또 다시 넓힌다고 합니다. 휴스턴에선 이미 3년 계획으로 여러 개의 도시 순환도로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지요. 서울도 인구만 늘어날 뿐 아니라 30년 후엔 차량도 미국처럼 늘어나 도시혼잡이 예상되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전두환 대통령의 88도로에 이어 고 시장께서는 서울시내에 세 겹이상의 순환도로를 속히 착공해야 할 것이라 생각되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더 말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말나온 김에 말을 이었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 일본을 가보니 외관상으론 흉물스러우나 시내고가도로를 잘 만들었는데, 먼 거리를 가는 2층 고가도로와 짧은 거리를 가는 1층 고가도로를 보았지요. 우리도 도시의 도로변 땅값뿐 아니라 고층건물 때문에 도로를 넓힐 수 어렵게 되었으니 그 때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는 시급하게 꼭 2층 고가도로를 만들어야 하리라고 보네요.”
고 시장은 즉시 “저가 하나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한 목사님께서 서울시 교통국장, 도로국장을 바로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하나라도 맡으셔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반색을 하면서 저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중책을 맡겼느냐고 거절하였다.
그때는 즉석에서 자격이 없어 못하겠다고 거절했으나 25년이 지난 지금 서울시내의 혼잡을 보고 가끔 체증을 체험할 때마다 그 때 한번 했으면 좋았을 걸…. 그런데 청계천 복원을 위해 고치다 신바람이 나서 고가도로 전부 철거한 시장이 이중 고가도로를 모두 철거했을 때엔 나의 분통을 어디에다 터트렸겠는가?
청계천의 신바람타고 대통령후보로 나와서 관광명소로 “한반도 대운하” 뻥튀기 공약을 듣고 포항으로 그의 형에게 전화해서 즉시 철회하지 않으면 낙선운동을 전국적으로 벌리겠다고 했더니 뻥튀기 공약은 사라지고 4대강으로 넘어갔다.
출퇴근 시간때 교통체증은 물론 전번엔 서울역 고가 하나 남은 것마저 원숭이 흉내 내듯 공원도로 만드는 바람에 서울역 근처에 와서 교통체증에 시간약속어기고 택시비를 몇 배나 지불했으니…. 현재 있는 서울역 고가도로 아래로 서울역을 지나 서대문과 남대문 쪽으로 V자형으로 구름 사다리형 고가도로를 만들었으면 얼마나 보기 좋고 편리하고 좋겠느냐고 생각한 때도 있었는데 앞으로 더욱 심화될 고통체증을 어찌할까?
선거철이 되면 대선이나 총선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날치기 뻥튀기 졸속 공약(公約)이라기보다는 나중에 결국 공약(空約)이 되는 정책들을 쏟아놓는다. 지난 총선에서도 똑같이 쏟아져 나왔다. 선거에 이기고 당선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동원하며 마구 쏟아져 나온다. 그 뒤는 어떤가?
60년을 보아왔다. 표가 될 만한 것이면 찢어진 입으로 마구 뱉는다. 4.19에 참여하여 100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순직하는 것을 보았고, 학우들의 피값으로 얻어걸린 민주당 정권은 신파 구파로 갈라져 싸울 때, 전국 대학생 웅변대회가 명동 시공간에서 열려 서울에 올라간 김에 젊은 학우들의 핏값에 국회의원이 된 저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방청하기로 했다.
1962년 2월 28일 일찍 국회의사당으로 갔는데 국회의원이신 외삼촌이 일찍 오셔서 입장하셨기에 입구에 있던 저는 신문지상으로 앞면 있는 노동당수 전진한(錢?漢) 의원에게 전석봉의원의 생질이라 소개하니 쾌히 입장권을 얻어 이층에 앉아 관람할 수 있었다.
단상 오른쪽 아래 앞좌석에 장면 총리와 일본의 사또 수상이 앉았고 회무진행은 마치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학급회의와 비슷했다. 목청 크게 일어서서 오른손을 흔들면서 “의장! 의장! 의장!” 소리 크게 지르는 사람이 발언권을 얻어 단상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뭐라고 떠들어 대고 또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올라가 오랫동안 얘기를 하는데 무슨 알맹이 없는 인기발언을 넘지 못한 듯 했다. 총회장 시절 국회조찬기도회에 초청받아 설교 후 조찬에 이어 방청을 했을 때 역시 큰 변화는 없는 듯 했고 그 후 오랫동안 국회조찬기도회와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20년전 BWA상임위가 스웨덴에 업살라(Upsala)에서 열려 회의 후 핀란드 관광차 여객선에서 만난 스웨덴인과의 대화에서 스웨덴 국회의원은 반드시 전문 직종을 가지고 있는 직업인으로 국회의원 급료는 일당을 받는 오늘 우리의 “알바직”과 비슷했다. 우리도 전문인으로 장단기계획을 세워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들려오는 여론의 소리는 국회의원 숫자도 100여명으로 줄어야하고 비윤리적 및 의무수행 미급자에 대한 국민소환도 있어야 한다라는 여론도 팽배하다.
우리 총회는 어떤가? 지난 68년 이후 거의 빠짐없이 50여년 가까이 총회에 참석했는데 80년 교단개혁에 앞장서서 현재 규약을 만들 때 “기획위원회”를 신설해서 장기계획(long range program)위원회를 열었으나 84년 총회장 임기가 끝난 후 사라져 버렸다. 행정과 정책은 장단기 계획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뻥튀기 날치기 정책은 결국 서울시 도로교통 체증같이 되고 만다. 총회뿐 아니라 산하의 모든 기관은 지금이라도 장단기계획을 조밀하게 수립하여 침례병원의 고통이 더 이상 타기관에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대학시절에 독일유학을 하고 돌아온 교수의 말에 기민당 당수 아데나워 수상은 라인강의 기적뿐 아니라 동서독 통합을 위해 장기계획을 세워 엄청난 예산으로 그의 통치 14년간 실천해 왔다고 했다. 언젠가 저는 대통령 측근에게 북한방문에 끝나지 말고 한국의 통일정책을 장기계획으로 수립할 것을 건의한 바 있었다. 독일과는 달리 비록 전쟁을 치룬 관계로 통일정책이 우리론 어렵다고 하지만 늦게나마 지금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선언하고 진행함에는 장단기계획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세워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잘 진행해야 하리라 본다.
총회장 시절 버지니아주 미국 리치먼드(Richmond)에 있는 남침례교 해외선교부를 방문하여 총제 이하 한국선교사로 나왔던 피칵 등 6인과 담화 중 그들의 향후 50년의 장기계획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전문위원으로 구성된 장기계획위원은 각 방면의 과거 현재를 비추어 미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해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1950년대의 1,200만 성도에서 2000년대에 1,900만으로 증가했으나 지금 1,600에서 1800만 이하으로 하락추세이며 작년엔 선교사도 1,000여명 소환을 결의했다고 한다.
/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