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이래 역사적으로 수많은 책이 국내외에서 금지도서로 지정되었다. 국내 금지도서의 내력을 찾아보았다.
1) 조선 초기에는 왕조체제를 위협하는 내용과 유교 외의 가르침을 담은 서책이 금서가 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정(鄭)씨가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암시한 ‘정감록’과 천주교 서적 ‘성찰긔략’, 동학사상을 소개한 ‘용담유사’, 김시습의 ‘금오신화’ 및 도교사상 관련 책들이 금서로 지정되었다.
2) 해방 이후의 대표적 금서로는 이태준의 ‘쏘련기행’, 신채호의 ‘을지문덕전’, 현채(번역)의 ‘월남망국사’(1960) 등이다. 월북문인 정지용, 백석, 이태준, 임화 등의 작품은 6·25를 전후해서 모두 금서 판정을 받았으나 그들이 북한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88년 삼일절을 기해 모두 해제 되었다.
3) 군사정부는 국내외의 명망 있는 학자와 문화예술인 종교인 및 재야인사들의 작품을 대량 금지도서로 만들었다. 비록 금지도서 목록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한완상의 ‘민중사회론’을 비롯해서 사회과학에 대한 도서 대부분이 금서 취급 받았다.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는, 한국의 금서는 맨부커 상, 콩쿠르 상, 횔덜린 상에 버금가는 영예”라고 조롱받기도 했다.
당시의 대표적 금서로는 박형규의 ‘해방의 길목에서’,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김지하의 ‘오적’,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등이 있고; 외국 서적으로는 1887년 발간되자마자 발매금지 처분된 톨스토이의 ‘인생론’,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다윈의 ‘종의 기원’ 등이 있다. 그러나 제6공회국의 문을 연 노태우정부는 1988년 삼일절을 기해 대부분의 금서를 해제했다
4) 1990년대 들어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1992)가 외설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끝에 금서가 되었고,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와 이현세(만화)의 ‘천국의 신화’(1997)가 뒤를 이었다.
5) 그러나, 역사적으로 성경만큼 금서목록에 자주 오르고 오랫동안 금지된 책이 없고, 동시에 성경만큼 여러 나라말로 번역되고 많이 읽힌 책도 없다. 가톨릭교회는 평신도가 성경을 읽어서 안 되는 이유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했지만(벧후3:16하) 실상은 교회가 신자의 제사장직분과 이신득의 등 성경의 핵심 교리를 버렸기 때문에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교회는 천 년 이상 사제들만이 읽을 수 있는 고전 라틴어 성경만 사용하고 다른 언어로는 번역하지 못하게 했다. 금서 가운데는 저질, 음란, 표절, 사회불안 조성 등으로 금지되어 마땅한 것이 많았으나 책의 내용으로 볼 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가 체제유지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하고 금서 낙인을 찍은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