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예배당 잔디 이야기

고성우 목사 / 반조원교회

20년 전 예배당을 새로 지을 때 예배당 현관 앞은 경사진 언덕이어서 약간 흙을 돋우어 폭 3미터 정도를 마당과 높이를 같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흙을 돋운 만큼 2미터 높이의 경사가 생겼고 흙이 비에 유실되지 않도록 잔디를 심었다. 처음에는 잔디가 잘 자라서 점점 촘촘해지고 조금씩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잔디밭에 침입자가 생겼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어려서 메꽃이라 불렀고 나팔꽃 비슷한 분홍 꽃이 피는 넝쿨 식물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섭게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볍게 뽑았더니 뿌리가 뽑히지 않고 윗부분에서 끊어지는 것이었다. 그런가보다 하고 끝냈는데 나중에 보니 거기서 또 싹이 나서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뿌리를 캐려고 하니 뿌리가 깊어 한 뼘은 보통이었다. 잔디를 상하지 않게 하려니 어려웠고 비가 온 후 땅이 물러진 후에나 제대로 뽑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해를 실랑이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에 잔디밭을 공격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쑥이었다. 결국 또 몇 년간 쑥과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자주 뽑아주다가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가면 쑥이 너무 커버려 뽑다보면 흙이 움푹 파이거나 제대로 뽑히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어느 날 너무 자란 쑥을 본 나는 더 이상 뽑기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에이 그냥 깎아버리고 말자’고 결심했고 성도님들에게 그냥 예초기로 깎자고 했다. 그 때부터 일 년에 몇 번씩 예초기로 깎아주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경사면은 잔디 대신 온갖 풀들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키 작은 잔디는 풀을 깎았을 때만 잠시 기운을 차리는듯하다가 금방 자라는 다른 풀들에 막혀 잘 자라지 못하더니 결국 그렇게 됐다.


물론 잔디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자갈과 함께 다져진 흙으로 된 예배당 마당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자갈 때문에 흙이 얇아 왕성하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조금씩이나마 쉼 없이 뻗어나갔다. 물론 질경이나 민들레 그리고 잔디와 비슷한 다른 여러 종류의 풀들이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하지만 일 년에 서너 번씩 그것들을 뽑아주는 성도님들의 도움과 응원에 힘입어 마침 예배당 마당에 차가 많이 다니는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잔디가 뻗어나가는 방법이 흥미로웠다. 기존의 잔디에 연이어 뻗어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보니 잔디 무리에서 뚝 떨어진 곳에 아이 손바닥만 하게 자리 잡은 잔디를 보았다. 마치 선교사가 파송되듯이 전진 기지처럼 자리를 잡더니 조금씩 세력을 넓히다가 다가온 본진과 연결되고 마침내 영역이 확정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의 잔디에게 엄청난 강적이 나타났다. 바로 토끼풀이었다. 쑥은 그래도 흙이 어느 정도 두툼해야 자라는데 토끼풀은 자갈 위에 흙이 얇은 곳에서도 잘 자란다. 쑥은 한 포기씩 뽑을 수 있지만 토끼풀에게 포기란 개념을 적용시킬 수 없다.


뿌리가 서로 얽히고설켜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뽑기도 어렵다. 더구나 자갈밭 같은 교회 마당이라 호미로 캐내기도 어려웠다. 마침내 성도님들이 내놓은 처방은 잔디를 제외하고 토끼풀만 죽이는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나는 제초제를 뿌리자는 성도들의 의견을 제초제는 사람이 입에 머금었다가 뱉기만 해도 결국 죽고 말 정도의 맹독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제거를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기에 성도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토끼풀은 제거됐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토끼풀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토끼풀과의 전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맨 처음 잔디 속에서 메꽃을 뽑아낼 때 나는 내 마음 속 잡초를 뽑아내는 심정으로 임했다. 그래서 하나하나 힘들여 뽑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근절되지 않고 계속 반복되자 재미는 사라지고 점점 짜증이 나고 귀찮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마음의 잡초를 뽑는 일에도 아무리 뿌리를 뽑는다고 뽑아도 또 자라나기에 어느덧 귀찮고 짜증나 그냥 예초기로 보기 좋게 쳐내는 정도로 대충 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쑥을 뽑을 때 참 끈질기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치 인간의 타락한 욕망처럼 말이다. 밧세바에게 드러난 다윗왕의 욕망을 생각해보면 그 욕망의 끈질기고 강력한 생명력에 몸서리가 처진다. 다윗왕 같은 인물도 자라난 욕망의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고 먹혀버렸으니 누군들 큰 소리 칠 수 있으랴. 평생을 주를 위해 헌신한 종들이 말년에 욕망에 사로잡혀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리고 주의 영광을 가리게 되리라고 누군들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뽑았다고 안심한 순간 어느새 손대기 어려울 만큼 자란 쑥을 보게 될 수도 있으니 참으로 방심할 수 없는 일이다.


마귀의 역사도 토끼풀처럼 그러하니 뽑아내기도 힘들 뿐더러 아무리 없앤다 하더라도 또 다시 틈을 타고 파고드니 말씀대로 마귀가 파고들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요 조심하고 깨어 있다가 발견하는 즉시 박멸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주님 오실 때까지.
자갈밭같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멈추지 않고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잔디처럼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리라. 잔디도 멈추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가 멈추랴!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