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릴리 바다와 사해
헬몬산에 내린 눈비가 강물이 되어 내려오면 갈릴리 바다에 모이게 된다. 갈릴리 바다는 분화구로 추측이 되는 곳이었는데 그 움푹 파인 곳에 물이 고여서 갈릴리 호수, 게네사렛 호수 또는 디베랴 바다로 불리게 되었다.
갈릴리 호수는 이렇게 물을 받아들이고 그 물을 요단강을 통해서 아래쪽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살아있는 호수가 되었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신선한 호수가 되었다. 또 물고기들이 그 곳에 많이 머물고 플랑크톤이 많아서 물고기의 먹이가 되며 이끼 같은 수초도 많이 살아움직이는 호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사해는 왜 사해(四海)가 되었는가? 사해가 이름 그대로 죽은 바다가 된 것은 요단강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어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내어보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사해는 지리적으로 지중해보다 400m나 낮아서 물을 내보낼 수가 없다. 사해는 결국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려 보내지 않아 물이 계속 증발하다 보니 소금만 남게되어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호수가 된 것이다.
문제는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어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죽게 된 것이다. 갈릴리 바다는 받아들이는 대로 그 만큼 또 내어 보내기 때문에 살아있게 되었고, 받아만 들이고 내어보내지 않은 사해는 곧 죽음의 바다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2. 우리는 하나님께 모두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냥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말씀대로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이 모든 세계의 것들을 거저주시고 사용케 하셨다. 심지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마저 인류의 구속을 위해 우리에게 주셨다.(요3:16)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 말이니라”(학2:8)고 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해, 달, 별과 우주 곧 지구상의 모든 것 공기, 물, 바다, 무생물, 동물, 식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주셨다. 성경은 “만인에게 생명과 호흠과 만물은”(행17:25) 하나님께서 친히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주신 만물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만이 친히 가장 많이 주시는 위대한 분이시다. 이 세상에 하나님만큼 우리에게 많이 주신 분은 없다. 큰 부자가 자식에게 아무리 많은 것을 주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비교한다면 티클에 불과하가.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거저 주는 데있다. 아무것도 받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무제한으로 계속 주는데 있다. 바울 사도께서는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4:7)고 반문하셨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하나님께 무진장으로 모든 것을 받았다. 태양은 태양광선을 우리에게 준다. 땅도 우리에게 결실을 준다. 땅은 줌으로써 상실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받아들인다. 이것이 땅의 법칙이다. 땅이 많이 내지 아니하면 땅은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땅은 풍성하게 자꾸 내기 때문에 풍성하게 도로 받는 것이다.
무한한 산천초목과 모든 동물의 세계, 바다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동물들도 자기 새끼를 낳고 씨앗도 뿌려지고 심겨지고 열매를 내게 된 것이다. 식물은 수업이 많은 종자를 낳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법칙이요, 자연의 법칙이다.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인다’는 속담이 있지만, 우리가 좀 더 큰 눈으로 볼 때 무진장으로 내리는 하늘의 비를 땅이 흡수해서 생물이 자랄뿐만 아니라 단단한 대지 속에 깊이 파고 흐르는 무진장의 지하수를 알아야만 한다. 하늘의 수증기 속, 물과 연못과 호수, 강과 바다에 물이 얼마나 많은가.
미국에 있는 나고야 삼목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벌써 나이가 2천살이 었으니 이제 4천년이 된 나무로써 하루에 10톤의 물을 빨아들이고 있다. 4천년 동안 매일 10톤씩 물을 빨아들였다면 그동안 수조톤이 넘는 엄청난 물을 먹었는데 그 나무는 땅 속에 있는 무진장한 지하수를 먹고 4천년을 살았고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3.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것으로 남을 도와야 한다. 남이 나에게 요청할 때 내가 그만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요청한 것으로 알고 거절하지 말고 도와야 마땅하다. 우리의 것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선한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말씀하셨고
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6:38)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대접받기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접도 하고 대접받기도 하는 사람이 있고, 그저 주고 대접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42)고 말씀하셨고,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8)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옷 두벌이 있는 자는 옷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아”(눅3:11)라고 침례요한이 말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11:1)
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4,25)고 솔로몬 왕도 말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비이기적이고 희생적으로 강도 만난 이웃의 봉사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 지를 잘안다.
또 성경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19:17)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시37:21)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뿔이 영화로이 드릴리로다”(시112:9)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눅12:33) “선한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8)
한명국 목사 / 증경총회장, BWA전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