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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추락

김형윤 목사의 새벽이슬-43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면서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니는 낭인 신세가 된 다윗은 광야의 아둘람 굴로 은신합니다. 그 소문이 퍼지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모였는데 환난당한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 약 400명 가량 됐습니다. 사실 다윗 자신도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을 때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를 의지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가 아둘람이 돼야 합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니까 어떤 사람도 예외없이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지만 특히 교회는 병들고 약하고 고통가운데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 들이 와야 하는 곳인데 오늘날 교회가 그렇지 못함을 봅니다.


기득권층의 편에 서있거나 힘있는 자들의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에돔사람 도엑이 다윗을 보았다고 사울에게 밀고를 했습니다. 도엑은 간신이었는데 사울의 목자장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입속의 혀처럼 굴던 도엑이 놉 땅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주고 음식도 주고 골리앗의 칼도 주는 것을 봤다고 한 것입니다. 사울은 도엑의 말을 듣고 신하를 시켜 제사장들을 불러놓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아히멜렉은 왕의 신하 중에 다윗만큼 충신이 어디 있으며 그는 왕의 사위이자 호위대장이고 왕궁의 모든 사람중에 존귀 한 자가 아니냐고 담대하게 변호를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걸고 한 행위였습니다. 그렇잖아도 다윗을 눈엣가시 같이 여겨 죽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에게 목숨을 내놓고 한 진정한 사랑의 충정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이 참 그립습니다. 무엇이 옳은 줄 알면서도 여러 사람 눈치나 보면서 말도 못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많은 이때에 자기가 손해를 보고 희생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윗의 편에 서서 웅변적으로 변호를 해주는 아비멜렉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조선시대 8대 임금이 예종인데 그는 자기와 동갑으로 병조판서의 자리에 오른 남이를 역모죄로 걸어서 잔인하게 고문을 가하고 결국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을지라도 남이가 반역을 하지 않은 게 사실인데 그가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서 죽게 된 것입니다. 남이장군은 공범을 대라는 문초에 당시 재상이었던 강순을 끌어들입니다. 그러자 강순이 왜 하필 아무 죄도 없는 나를 끌어들이느냐며 남이를 나무랍니다. 그 때 남이는 대감은 내가 역모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한 마디 변호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실을 말하고 그 편에 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면서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 것도 큰 죄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청문회에 나오거나 특검에 불려간 사람들의 공통점이 자기는 정말 하나도 모르며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태연자약하게 오리발을 내 밀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봅니다.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의 태도는 정말 너무 감동적입니다. 누군가의 진실을 바로 알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심정입니까? 사울은 신하들에게 그 제사장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그들은 감히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자 간신인 도엑에게 시켰는데 그는 제사장 85명과 그의 가족들과 동물들까지 다 죽였습니다. 그 처참한 학살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고 목숨을 건진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다윗에게로 가서 그날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전합니다. 그 말을 들은 다윗은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 자기 탓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나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지도자를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오늘날 너 때문이야” “네 탓이야라고 지루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이때에 다윗이 보여준 감동적인 모습이 그립습니다.

김형윤 목사 / 서울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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