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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인의 신앙적 정체성-6

침례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 그리고 신자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 사람이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새 사람으로 부활한 것을 가장 잘 상징해 주는 침수례의 방식으로 뱁티즘을 베푼다. 만약 미래의 어느 날 재림하신 예수님이 한국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유아세례와 세례를 보신다면 의아해 하지 않으시겠는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뱁티즘의 방식을 보시고 신기해 하지 않으실까?

침례교인들은 주의 만찬도 상징적인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상징하고 기념하는 의미로 베풀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신앙고백에 근거한 신자의 뱁티즘을 받은 신자들에게 주의 만찬의 떡과 잔이 베풀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루터교회에서는 공재설의 입장에서 떡과 포도주에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임재해 있다고 믿는다. 개혁교회(장로교회)에서는 영적 임재설의 입장에서 실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임재해 계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이 임재한 떡과 포도주는 거룩해져 있다고 생각해서 주의 만찬을 거룩할 성() 자를 써서 성만찬이라고 부른다.

성만찬 후 남은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영이 임했던 떡과 포도주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거나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땅에 파묻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나 성령은 인격체이신데, 무생물이자 비인격체인 떡과 포도주에 영적으로 임재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무생물이자 비인격체인 떡과 포도주에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임재해 거룩하게 되고 그것들이 영적인 양식이 된다고 믿는 것은, 화체설이 그러하듯 일종의 신앙적인 미신이다.


성령께서는 떡과 포도주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은 신자들에게 임하셔서(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순간부터 이미 임해 계신다) 그 떡과 그 포도주를 나를 위해 십자가 상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살과 십자가 상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의 만찬에 참예하면서 2,000년 전에 나를 위해서그리고 나를 대신해서십자가 상에서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공재설이나 영적 임재설은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이된다는 성례전주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로마가톨릭 교회의 화체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례는 형식일 뿐이고 상징일 뿐이고 기념일뿐이라는 성례형식주의에 입각한 해석이 신약성서적인 것이고 그것이 진정 영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교회에 위임하신 두 가지 의식에 대하여 성서에서 사용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 낸 신학적인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뱁티즘에 대한 성서적인 용어는 침례이고 주의 만찬에 대한 성서적인 용어는 주의 만찬이다. “세례유아세례성만찬과 같은 신학적인 용어보다 성서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다 더 성서적이지 않은가?

 

6. 교회와 국가의 분리

(국교체제의 교회에 대한 반대)

침례교인들은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말로 하면 세속권력과 결탁된 시교회나 국가교회를 배격한다. 교회는 세속권력과 무관한 예수 믿은 신자들의 영적인 공동체여야 한다고 믿는다. 침례교인들은 세속권력과 교회가 결탁을 선언했던 313년의 밀라노 칙령 이전의 교회 즉 신약성서적 교회를 이상으로 한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제국의 권력가들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


신약성서적 교회는 세속국가 권력과 무관한 교회였고 도리어 핍박을 받는 교회였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교회들은 국가교회나 시교회체제의 교회가 아니었다. 회개하고 예수 믿은 신자들로 이루어진 순수한 신앙공동체, 달리 말하면 성령님을 각자의 마음 속에 모신 성령공동체였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며 기독교인들을 향해 신교의 자유를 선언했던 밀라노 칙령(313)은 한 편에서는 기독교회가 로마제국을 정복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기독교회가 세속정치권력과 결탁을 하고 야합을 해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순수성을 상실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교회가 세상권력과 결탁하면서 교회의 타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를 교회사학자들은 콘스탄틴의 공생라고 부른다. 학자에 따라서는 교회와 국가의 종합”, “결혼”, “합금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그 후 380년에는 데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니케아 신조를 믿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언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이제 유일하게 합법적인 로마제국의 종교가 됐고 다른 종교들을 불법으로 간주해 그들을 핍박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교회는 세속국가 권력과 공생하는 교회가 되었는데, 이는 신약성서적 교회로부터 크게 일탈한 교회였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16세기에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지만 루터와 쯔빙글리와 깔뱅같은 주류종교개혁가들은 세속권력가들의 후원을 입어서 개혁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들이 지상에 세운 교회들은 여전히 교회와 시 혹은 교회와 국가가 연합된 형태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실제로 루터교회는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국교가 되었고, 장로교회는 제네바의 시교가 되었으며 스코틀랜드의 국교가 됐고, 영국국교회는 영국과 영연방에 속한 나라들의 국교가 되었다. 로마가톨릭 교회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 등의 나라에서 국교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처럼 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이 세웠던 교회들은 세속권력과 무관했거나 오히려 세속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신약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을 건국했던 건국조상들은 유럽에서 발생했던 끔찍한 종교전쟁들이 새로운 공화국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로마가톨릭 진영과 프로테스탄트 진영 간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종교전쟁들(두 차례에 걸친 카펠전투, 쉬말칼덴 전쟁, 30년전쟁 등)이 있었는데, 이런 전쟁이 일어난 배경에는 특정 기독교 종파가 특정국가의 국교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자각이 미국의 건국조상들에게 있었다.


/ 김승진  침신대명예교수 예사침례교회 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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