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자치권
에베소서를 비롯해 일부 서신서들에서 “우주적 교회”가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도행전과 대다수의 서신서들에 등장하는 신약성서적 교회는 “지역교회”를 가리킨다. 일정한 지역이나 도시에 세워진 예수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인 것이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갈라디아교회들, 골로새교회, 고린도교회, 로마교회 등은 지상에 세워진 지역교회들이었다.
지역교회는 상호 독립적이었고 자치적이었다.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A Spiritual Body of Christ)이었다. 1,000명이 모이는 교회도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이요 10명이 모이는 교회도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이다. 사명과 책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교회의 본질에 있어서는 1,000명이 모이는 교회나 10명이 모이는 교회나 각각 하나의 독립된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침례교인들은 각 지역교회는 상호 평등하다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혀 죽으신 십자가 형틀은 평평한 땅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들 간의 교제를 위해 그리고 하나의 지역교회가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적인 선교나 교육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지역교회들을 묶어주는 지방회와 총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침례교인들은 교회들의 연합이나 모임을 또 다른 교회로 여기지는 않는다. 교제와 협력을 위해 지방회와 총회가 존재해 왔지만, 그것들은 엄밀히 말하면 참석자 개인들의 모임이지 그 자체가 교회는 아니다. 그래서 남침례교에서는 지방회나 총회의 참석자를 “사신”(messenger)이라고 부른다.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지역교회의 대표로서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석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지방회나 총회에서 참석자가 어떤 결정을 하기 위해 투표를 했더라도, 교회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 결정이 지역교회를 당연히 구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참석자가 교회의 대표 자격으로 지방회나 총회에서 투표하여 어떤 결정을 했다면, 그 결정은 당연히 지역교회를 구속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자치권은 훼손을 받게 될 것이다. 지방회나 총회에서 어떤 결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결정을 받아들일 것인지의 여부는 지역교회가 최종적으로 심의하고 결정한다는 것이 침례교 회중주의의 행정방식이다. 오늘날 한국의 침례교회에서 지방회나 총회에 참석하는 자를 “대의원”(delegate)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교회의 대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썩 적절하지 못한 용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개인 자격임을 가리키는 용어(사신)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9.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
침례교인들은 지역교회의 정치와 행정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들만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교회회원들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결정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믿는다. “침례교회는 개교회주의다”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개교회주의라는 말은 개교회이기주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침례교회는 지역교회 자치주의다”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침례교인들은 각 지역교회는 자치권을 갖는다고 믿는다.
지역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서 “스스로” “규범”이 된다. 각 지역교회는 “스스로 통치하는 유기체”이다. 따라서 지역교회 이외의 어떠한 외부의 개인이나 단체나 지방회나 총회나, 심지어 시나 국가도 지역교회의 일에 간섭하거나 개입하거나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침례교인들은 지역교회의 결정은 외부기관의 재가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서 최종적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래에서 지역교회의 회중(사무총회나 사무처리회)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지는 기관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지방회나 총회는 지역교회의 사역을 돕고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지역교회 혼자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큰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지방회나 총회는 “종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침례교인들은 외부기관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직 교회의 머리되시고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지역교회 문제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적인 민주주의에 의해 교회는 자치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김승진 침신대 명예교수 예사침례교회 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