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센스있는 화내기 ③

가정회복-12

센스있는 화내기에서 가장 조심스럽고 힘이 드는 부분은 역시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을 찾아가서 대화하는 일이다. 분노조절훈련 프로그램에서도 비교적 후반부에 들어가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만큼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에는 먼저 생각하고 연습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전의 칼럼에서 다뤘던 대로 분노의 뿌리가 과연 어디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먼저이다.


분노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자세히 들여다 볼 때 분노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여유와 지혜가 생겨나기도 한다. 분노가 치밀 때에는 좀 더 건강하게 그 에너지를 발산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때리거나 부수거나 술, 담배, 마약 등으로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운동, 음악, 미술, 수다, 혼자 소리 지르기, 기도 등이 더 건강한 발산법임에는 틀림없다. 시간을 두고 이런 저런 방법을 연습할 때쯤 되면 이미 상대를 찾아가서 한바탕 퍼붓고 싶은 마음이나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은 이미 사그라져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 화나게 하는 상대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상대의 의도가 나를 상처주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확인이 되기도 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다리를 놓는 긍정적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나의 분노를 잘 전하는 것이 상대와 더 가까워지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야기하기 전에 반드시 분노의 강도나 표현 방법이 상황에 적합한지 자문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나 상대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현할 수 있는지에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화가 나서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니가 인간이냐, 쓰레기냐?”라는 식의 말들을 막 쏟아놓게 되면 어떤 말도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때 참지 못하고 집어던진 전화기나 컴퓨터 때문에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상대에게 분노를 전하는 일은 복수를 하는 일도, 상대의 문제를 똑바로 지적하고 집고 넘어가기 위함도 아니다. 화내는 일은 잘잘못을 따지고 승패를 가르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 목적은 반드시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있다. 이 목적을 잊으면 결국은 서로를 상하게 하고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 채 끝나는 대화가 돼버린다. 부부싸움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승리해서 기선을 잡겠다는 의지로는 결국은 상처만 남는 전쟁이 된다.


상대를 찾아가서 비판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나 자신이 준비돼야 하고, 상대 역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둘 다 배가 몹시 고프다든지 바쁜 일에 좇기고 있을 때에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이미 반은 각자의 짜증을 안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불만 붙이면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질 준비가 돼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시간이라든지, 아내가 빠져있는 드라마 중간에 이야기 좀 하자는 말을 건넸다가는 본전도 못 찾기 십상이다. 서로가 비교적 편안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선택하는 것도 비판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지혜이다.


타인에게 분노를 전하는 일은 상대를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효과적이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거나 모욕을 주는 말로 시작을 한다면 그 대화는 이미 효력을 잃는다. “당신은 왜 그렇게 게을러? 내가 다 큰 사람 뒤치다꺼리를 맨날 하고 살아야 돼?” “네가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사람이 왜 그렇게 배려심이 없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당신이 뭔데 참견이오? 사람이 그렇게 생각이 없어서 쓰겠소?” 등등의 말은 비난으로 시작한다. 상대의 인격을 모욕하는 말은 대화로 이어지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닫아걸게 한다.


비판의 요점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한다. 상대의 인격이 아니라 행동을 중심으로 말하되, 비난보다는 나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게으르다는 표현보다는 방이 너무 지저분하니까 자꾸 짜증이 나.” 성질이 급하다 보다는 운전을 빨리 하니까 무서워.”라는 표현이 행동을 중심으로 한 표현이며, 나의 감정을 전달하는 말이다. 행동을 중심으로 한 말은 훨씬 더 완곡하고 구체적이다. 내 감정을 표현하려는 노력은 덜 공격적이고 부드럽다. 집사님은 왜 항상 부정적이냐는 비난은 상대를 화나게 한다. “집사님께서 반대하시니까 제 사기가 좀 꺾이네요.”는 상대를 미안하게 한다. “뭐가 되려고 저렇게 말을 안 듣냐는 우리도 부모님께 매일 들어온 잔소리에 불과하다. “네가 다치거나 잘못 될까봐 불안하고 화난다는 사랑을 전하는 말이다. 똑같은 이야기인데 듣는 사람의 느낌은 참 다르다.


센스있게 화를 내는 일은 참 고려해야 할 단계가 많다. 비판적인 대화가 효과적이려면 칭찬보다 백번은 더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살피다 보면 어느새 화가 났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말은 부드러워진다. 말과 행동으로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현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 단계 더 생각할수록 분노의 파괴력은 줄어든다.

두 단계 더 고려할 때 분노가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분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분노를 건강하게 다룰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우리의 성급함이 문제를 만들어가는 지도 모른다.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