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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도둑놈들아!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내 말 들리냐? , 이 도적놈들아!” 건너편 서대문 감옥 10(열번째 건물)의 아래위층에 쇠창살을 잡고 하염없이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면서 고요한 일요일 아침에 따스한 봄 햇살을 쬐던 죄수들이 나의 고함소리를 듣고는 방에 앉아 있는 동료들에게 아마 오늘도 어느 미친놈이 무엇이라 지껄이는지 마침 심심하던 차에 들어보자고 했는지 하나 둘 셋 쇠창살 사이로 얼굴을 내밀면서 매꿰갔다.


적막한 일요일이면 가끔 고함소리가 울리는데 어머니, 어머니.”라고 애타는 울부짖음이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들 수 없는 말이나 미친놈의 발광하는 고함을 거드는 소리도 들려오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쇠창살 좌우를 두 손으로 굳게 잡고 올라서서 내 목소리가 내가 있는 감방에는 들리지 않게 얼굴을 창살에 바짝 붙이고 또 크게 소리쳤다. “도둑놈들아! 내말 들리니? 잘 들리면 고개를 흔들어주든지 손을 창살 밖을 내밀어 흔들어라! 내 말 알겠냐?” 라고 크게 소리쳤다.


1974310일 나는 긴급조치 하에 보안법 등의 위반혐의로 남산 중앙정보부에 두 번째 압송된 뒤 소위 죄수들이 말하는 피아노를 치고 검찰청에 이송되어 서대문구치소 9사상에 수번 2342로 수감됐다. 주일이면 혼자 예배를 드리게 됐다. 기도하고 성경을 많이 읽은 후 입소전에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온 찬송가 488장을 교도관에게 안 들키도록 나지막하게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불렀다. 차츰 마음이 안정되니 교도소는 감옥이 아니라 정말 교도소가 되어가고, ‘기도원이 되어갔고, ‘가정교회가 되어 천국으로 마음과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 꽁보리밥 한 덩어리를 30분이 넘도록 한 숟가락을 40회 이상 맛있게 잘 씹어 먹게 됐다. 설사도 그치고 소화도 잘 됐다.


그러나 주일이 오면 두고 온 개척교회 어린 양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하염없이 닦았고, 처자식과 동역자들 및 함께 갇힌 친척들과 수감자들을 생각하며 쇠창살을 잡고 멀리 인왕산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주일에 설교를 못하니 이젠 그것이 정말 견딜 수 없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일요일이면 담당교도관이 쉬고 죄수들끼리 하는 속칭 땜통(임시로 땜질하는)’ 교도관들이 들어오므로 좀 더 한결 자유로운 하루였다. 때마침 나는 문득 성령님의 감동이 떠올라서 그날은 쇠창살에 타고 올라 설교를 하게 된 것이다. 경상도 토박이 발음에 충청도에 10여 년간 살며 또 목회를 했기에 충청도 말투가 섞여 버렸다.


, 이 도둑놈들아! 내 말 들리냐! 우리끼리 하는 말로 우리는 다 도둑놈들이 아니냐? 딱 까놓고 말해보자, 어쩌면 도둑이 아니라 도적(盜賊)놈들도 있지 않냐? 들치기, 날치기, 폭치기부터 사기꾼, 폭력, 절도, 강도, 간통, 강간, 등등 도둑놈들이 맞지 않냐? 우리들 중에도 피라미도둑, 잡새도둑도 있지만 정치꾼 도적, 경제사범 도적 같은 범틀()’도적도 있고 어떤 놈들은 강생이(담배)’ 몰래 먹다가 걸려 아래층 체벌방 신세도 되는 것 아니냐?” 건너편 창살에 붙은 도둑놈들이 무엇인가 지껄이며 동작으로 응답해왔다. 아침 햇살에 비친 하얀 얼굴들이 고개를 아래위로 또는 손을 들어주든지 팔을 내밀어 표시해 주었다.


, 이 도둑놈들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라! 우리만 도둑놈이냐? 온통 세상이 도적판이 아니고 뭐냐? 도둑을 지키는 여기도, 우리끼리 하는 말로 허가 난 도둑이 있고, 고관대작 도적도 있겠고, 공화당 민주당 정치꾼 도적이나 푸른 기와집 속에서나, 재벌 도적도 있고, 어두운 뒷골목에 깡패들이나.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가 양심적으로 따져보면 이놈의 세상이 온통 도적놈의 노름판이 아니고 무엇이냐! 나는 빨간딱지(보안법), 오른쪽 방엔 노란 딱지(긴급조치법)의 김동길 교수, 왼쪽 방에 논뚝에서 풀을 베다가 다투어 낫을 잘 못 놀려 아래 논 머슴의 등에 꽃아 죽여 그만 파란 딱지(살인수)가 이웃으로 잘 지내고 있어!”


설교는 상대적이라 나는 이렇게 공감대를 형성해 이목을 끌어 놓은 다음 수감자들의 분위기와 감정을 모아놓고 말을 이었다. “나는 오늘 구치소에 있는 빨간색 성경을 보니 두 도적놈의 이야기를 봤어! 살인강도 두 사람이 예수의 십자가 좌우에 달렸지. 십자가의 고통과 신음 중에도 예수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지. 이 소리를 들은 왼편에 달린 강도는 안타깝고 속상해서 예수를 보면서 이봐요 예수 양반,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시오. 왜 여기 달려 죽으려 해요? 당신도 살고 우리도 같이 삽시다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던 오른편 강도는 네 이놈, 너나 나는 똑같은 강도 놈 신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는 우리 죄 값대로 당연한 보응을 받아 십자가에 죽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 사람 예수가 행한 것은 옳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크게 꾸짖었다. 그러면서 예수를 향해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더니, 예수는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하는데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는 죽기 직전에 예수 믿고 낙원 약속을 받았다는 성경말씀이오! 오늘 그 감방에서 성경을 펴놓고 읽고 마음 한번 확실히 고쳐먹고 예수님을 오른편 강도처럼 딱부라지게 믿으란 말이요! 들어보시오! 우리가 다 감방에 플라스틱 변기가 구석에 있잖소? 거기에는 설거지물과 세숫물에다 설사 똥도 있고 말뚝 똥도 있어 구린내와 여러 가지 오물 냄새가 나는 거요! 이와 같이 큰 죄든 작은 죄든 죄는 죄요! 도적 냄새 털어야 된다는 거요.


감방에 또 오고 싶은 사람 어디 손 들어봐요! 없지? 오물보다 추하고 더러운 세상이라 욕하지 말고 우리끼리의 말로 나부터 손 씻읍시다! 그렇지! 사회에 나가면 다시 이곳에 들어오지 맙시다! 우리 다같이 손을 씻읍시다! 도적의 심보 고치고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여기는 또 다시 들어올 곳이 못되는 거야! 교도관 미워하지 말고 우리 다시 안 들어오면 교도관 실직되는 꼴 보게 되는 거야! 우리 다 같이 나랏일을 돌보는 교도관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고 죄지은 나를 미워하고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맙시다! 알았어! 했더니 도둑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로 응답했다.


한참 속 시원하게 설교가 줄줄 잘 내려가는데 뒤쪽에 감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 그만 설교가 중단되었다. 뒤돌아보니 철거덕문을 따고 교도관이 들어왔다. “이봐요 쇠창살에 기어올라 뭣 하는 짓거리요! 체벌독방에 가고 싶소!” 나는 쇠창살에서 손을 떼 방바닥으로 내려왔다. “이봐요 교도관님 목사가 주일에 설교를 못하니 속에서 천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어 동료 죄수들에게 다시는 이곳이 올 곳이 못된다고 일러주고 있었는데. 아 여하튼 죄송합니다. 저의 입장도 좀 이해해주십시오라고 사과했다. “목사 영감, 여기 어디 예배당인줄 아시오? 한 번 더 그러면 그때는 정말 체벌방 갈 각오하시오!” 하고 교도관은 나가 감방 문을 잠그고 휙 사라졌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설교의 결론부분인 결신과 초청도 미진했으니 꼬리 잘린 설교라서 매우 아쉬웠으나 정말 그날은 아주 속 시원하고 통쾌한 주일이었다. 출감 후 지난 수십 년간 전국 여러 교도소를 다니며 교도소 선교회장으로 설교하면서 그때의 절박한 심정으로 수감자들을 대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일을 하라”(4:28)

 

한명국 목사 /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