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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본 갈라디아서의 구원론-18

한국교회에서 대체적으로 장로교는 칼빈주의를 따르고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회는 알미니우스주의를 따른다. 침례교는 초창기에는 알미니우스주의를 지지하는 일반침례교회와 극단적 칼빈주의를 따르는 특수침례교회로 양분됐다. 그러다가 18세기 말에 온건한 칼빈주의를 토대로 한 복음주의 침례교 교리가 나타나 일반침례교회와 특수침례교회가 통합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교회들은 두 입장을 모두 혼용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두 견해가 성경적인 구원론을 모두 담을 수 없는 불완전한 견해라는 것이다. 성경은 예정도 말하고 있고 성도가 타락할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어느 부분만 발췌해서 자신의 교리를 주장하는 데 이용하지 말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부분을 담을 수 있는 구원론을 연구하는 겸손한 신앙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신학자 야곱 알미니우스(Jacob Arminius)는 원죄와 하나님의 은혜의 주도권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상호협력적 관계로 파악했다. 그가 독자적인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선행은혜의 개념이었다.


어거스틴-칼빈의 죄론을 수용하면서도 이중예정과 불가항력적 은혜개념을 피하기 위해 선행은혜 개념을 독자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 침례신학대학의 김용복은 알미니우스의 선행은혜 개념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 자유의 문제를 풀어내는데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그가 어거스틴-칼빈 전통의 전적 부패교리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는 결론을 내린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 대립은 지금까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처럼 보인다. 어느 견해를 취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구원관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칼빈주의가 옳은가? 아니면 알미니우스주의가 옳은가? 따지고 서로 비판하기보다는 어느 부분이 더 성경적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론에 적합한가?라는 입장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이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들이 진리에 순종할 때 성령은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영생을 거두게 하신다는 것이 갈라디아서의 구원론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러한 구원론을 칼빈주의나 알미니우스주의의 어느 하나의 견해만을 가지고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21절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신자의 배교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알미니우스주의의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가 성도의 견인과 배교의 문제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아니면 현재의 구원은 미래의 구원을 보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서로 양보 없이 갈등과 대립으로 일관해 온 까닭은 신학의 전체 체계를 포괄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강조하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저항할 수 없고 그 논리적 결과가 택자의 견인이다. 그러나 알미니우스주의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기에 조건적 은혜를 말하게 되고 그 결과 신자의 배교성을 인정한다. 즉 칼빈주의의 불가항력적 은혜성도의 견인의 근거로, 알미니우스주의의 조건적 은혜배교의 근거로 작용됐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배교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다. 특히 마태복음, 히브리서,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한 심판의 경고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해 알미니아누스주의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결정에 의해 좌우됨으로 은혜의 의미가 극도로 약화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남침례교 신학자 E. Y. 멀린스(E. Y. Mullins)강권적 은혜를 제시한다. 김용복은 불가항력적 은혜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불가항력적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다가 인간의 반응과 자유를 약화시켰고, 조건적 은혜는 인간의 반응과 자유를 강조하다가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한계점을 노출시켰다. 그러나 멀린스의 강권적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반응을 동시에 강조했다는 점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협력적인 관계를 분명하게 포착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멀린스의 강권적 은혜는 견인의 확실성과 배교의 가능성을 포괄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주목을 받을 만한 개념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반응을 포함하고 있고 신자들이 자신을 방치하면 은혜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신약 성서의 저자들은 경고를 하고 있다.

멀린스의 강권적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자유와 인격을 배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강권적 은혜는 설득적으로, 인격적으로, 강권적으로 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고 그리스도인을 위한 견인과 보장을 보여준다.


김종이 목사 / 성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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