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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의 실전 :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급소를 공격하라-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진리를 말씀으로 증명하라)
방은수 목사의 신학의 변

이단은 대부분 삼위일체 교리를 공격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삼위일체를 공격하는 최종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론을 펴서 기독교의 핵심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으로 처음부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입증하는 말씀을 무기로 삼아 적의 급소를 공격해야 한다. 그들은 비진리를 무기로 삼는데 그것은 진리 앞에서 무력한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라는 검으로 적의 급소를 정확하게 찔러 치명상을 입혀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진리의 검은 아주 강하면서도 아주 날카로워야 하고 무엇보다도 날렵해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싸울 때 어떻게 하였는가를 통해서 우리는 영적 전투의 전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삼상 17:38~40). 다윗이 사울에게 불려 갔을 때 사울은 자기의 갑옷과 무기로 그를 무장시켜 보내려 하였다. 하지만 다윗이 그것들을 착용해 보니 자신을 너무 둔하게 하고 거추장스럽게 하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평소에 맹수들과 싸울 때 사용하던 무릿매와 (본딧말은 물매가 아니라 “무릿매”이다) 목자의 막대기(maqqel)만을 들고 평소의 복장으로 골리앗에게 나아갔다. 전투에서는 힘과 기동력이 제일 중요한데 무릿매는 다윗에게 가장 강력하면서도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가장 기동성이 뛰어난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무릿매에 장전할 돌로서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랐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계곡 물속에서 계란 모양으로 연마된 수석이었고 고대 중동의 전투에서 이것은 무기로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삿20:16; 왕하3:25). 그러므로 우리가 이단을 상대로 싸울 때도 장황한 이론이나 변론으로 접근하려 해서는 안된다. 자기 완력에 맞는 무게의 날렵하고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일거에 급소를 찔러 버려야 한다. 그 날렵하면서도 날카로운 칼은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성경적 논증이다. 그러나 그 칼이 강하고 날카롭기 위해서는 미리 진리의 말씀으로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단의 특징은 진리의 성경을 가감하거나 변조하거나 성경 전체를 아예 부정하거나 하여 말씀을 파괴하는 것이다.


특히 일부분 또는 몇 구절을 떼어내 가지고 그럴듯하게 성경 전체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과의 싸움에 동원되는 논증의 말씀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온전하게 뒷받침 되는 것이어야 하고 교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진리로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이단 집단과의 싸움이 장기간이 될 경우에는 주석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이단과의 전투가 지속될 때 그들의 비진리가 계속적으로 드러나고 무너지게 해야 되기 때문이다. 마치 도가니에서 쇠를 달군 다음에 모루에 올려놓고 쇠망치로 두드리는 작업과 담금질을 반복함으로써 강철로 만들어진 검처럼 돼야 한다. 그리고 모양새가 날렵하게 디자인 돼야 하고 잘 갈아서 날카롭게 날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실전에서는 성령님의 지혜와 감동을 받아 다윗처럼 민첩하고도 강한 타격을 가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몇 가지 말씀만을 가지고 논증하되 장기전에 대비해 말씀을 심도 있게 다루려고 한다.
  
1. 이사야 9장 6절의 예언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그것의 성취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이사야9:6은 그리스도께 대한 구약의 많은 예언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명확하게 증거하는 중요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메시야는 사람으로 태어나실 것과 그분의 신성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명칭들이 그분에게 주어질 것뿐만 아니라 신약에서 완전하게 계시될 삼위일체의 희미한 씨눈까지 미리 계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하여 다음의 중요한 진리들을 계시하고 있다.


1) 이스라엘의 메시야(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갖추고 계신 신비로우신 존재이시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메시야께서 한 인간으로 태어나시되 한 “남자 아기” 즉 한 “아들”로 태어나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즉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메시야의 인성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예언은 한 인간으로 태어나실 메시야께 그의 신성을 명확히 나타내는 칭호들이 주어질 것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메시야로 오실 분은 인성과 신성 모두를 함께 소유하실 분이심을 명확히 계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신약은 증언하고 있다.


먼저 공관 복음의 기록을 살펴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드러났더니”(마 1:18)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마태는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태어난 이 “아들”이 이사야가 그의 책 9:6에 기록한 그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마태는 1:23에서 사 9:6을 인용하지 않고 사7:14를 인용하고 있다. 사7:14는 아하스 왕에게 주어질 징조로 처녀에게서 태어날 “임마누엘”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이 “임마누엘”과 마태가 말하는 “예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것에 관해서는 차후에 자세히 다룰 것이고 여기서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에 대해 논하려고 한다. 이사야가 사9:6에서 예언한 그 “아이”가 갖게 될 이름들 중에 신성을 표현하는 이름들이 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이는 인간의 씨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됐다고 말하고 있다. 이 양자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신 것이 죄인이 된 아담의 씨로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고 따라서 그분의 영과 육이 원죄에 오염되지 않으신 것을의미한다.  <계속>


방은수 목사 천북신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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