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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는 예수님의 첫 번 외치신 말씀에 젊은 목회 시절 은혜 받아 부흥회를 인도할 때는 거의 언제나 “회개에서 천국”이란 주제로 집회의 첫 시간에 소리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옛날 선지자나 침례요한이나 예수님의 제자인척 흉내를 잘 내었던 것이었다.
요즈음도 사람들은 아마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싫어하고 꺼려하며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게 느껴진다. 그래서 고소한 얘기나 설교로 웃기는 코미디 출연으로 인기를 얻는가?


왜냐하면 요즈음뿐만 아니라 67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교회 나갈 때부터 저나 다른 학생들이나 어른 교인들도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라는 설교를 귀에 달콤한 귀뚜라미 소리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아왔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라고 대답해 아내에게 떠넘겼고,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3:14)라고 하와도 뱀에게 돌리고 회개치 않았다.


부전자전으로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에서 돌로 쳐 죽인 후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반문하며 “네 아우의 피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4:8~10)고 지적했는데도 가인은 에서처럼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히12:1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라며 우리게 상징하는 바가 크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유대의 죄악으로 선지자들은 멸망을 부지런히 외치다 억울하게 죽고 순교의 장도에 수 없이 올랐으나 회개치 않은 왕들과 백관들과 백성들로 비참한 멸망을 가져왔다. 선지자들의 예언 메시지는 회개하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임을 목숨을 걸고 엄중히 예언했는데도 그들은 종래 회개치 않았다.
그중에 브두엘의 아들 요엘 선지자의 외침을 살펴보면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요엘2:13)


오늘 우리나라도 하나님께 진정한 중심의 회개로 난국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자비의 은총을 입어야 한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겔18:3) 세계의 역사를 보더라도 종국적 멸망이 주권자의 죄악에서였다. 헬라의 영주 알키아스는 폭군으로 가혹하고 잔인한 악정으로 드디어 혁명군이 일어나게 됐다.

간신들과 더불어 주연을 열고 있을 때 아데네에서 전갈이 왔다. “중대사건이니 모쪼록 빨리 읽어주소서 부탁입니다.” 취안몽롱해진 알키아스는 도무지 서한을 받지 않았다. “무엇이라구? 중대사건이라 하하하…중대사건은 내일이야” 이렇게 말하고 상대도 하지 않고 주연에 빠져 취해 있었다. 그날 한밤중 드디어 혁명군 일당은 기습해 궁전을 포위하고 난입하여 알키아스 왕과 그 일족을 전멸시키고 말았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5)


히틀러를 비롯한 근대사에도 독재자의 최후를 보아왔지만 중국 역사에서 수나라 건국 문제는 황태자인 양광 곧 수양제에 의해 죽었고, 나아가 형인 용을 목메어 죽였고 막내아우 양을 평민으로 강등시키는 등 4형제를 그렇게 한 후 제위에 오른 뒤에 사치와 음탕 무도한 행동으로 백성을 혹사 학대하는 폭군으로 전락했다.
그는 무리한 사업과 고구려 침공에 실패로 백성의 원성과 반란으로 618년 3월 교라위 병사들의 침소에 급습해 교살해 버렸으니 그 때 나이 50세였다.


양제의 살해 뒤 아우인 촉왕 수, 차남 동, 손자인 담을 비롯한 일족이 모조리 살해로 수나라는 2대에 수명을 마친 중국 역사에 가장 비참하고 짧은 왕조가 됐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는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3)

요나 선지자는 역행의 길에서 먼저 자신이 회개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로 고래 뱃속에서 살아나 니느웨 성에서 외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니느웨 사람들이 한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위에 앉으니라”(욘3:5~6)


하나님은 회개하는 심령, 회개하는 족속, 회개하는 국가와 민족을 찾으시며 오래 참으시사 결코 멸절시키시지 않으신다. 구약성서에는 더 많은 회개의 촉구와 회개로 구원받은 역사가 있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가슴을 치며 부르짖는 것보다 마음을 찢고 흐느끼는 곧 갈보리 동산에 올라 십자가로 회개하는 길만이 너와 내가 사는 길이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시7:12)


대학교 2학년 때 김수철 철학교수는 나에게 성자 어거스틴의 삶과 사상에 대한 숙제(Project)를 주셨다. 회고하여 요약하면 그는 일찍 가출해 16세에 사생아를 낳은 애가 됐고 이교인 마니교에 깊이 빠졌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 모니카는 눈물로 그를 위해 회개의 기도를 30년간 드렸다.
어거스틴은 밀랑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사생활에 대한 죄악의 길에서 극도로 번민하고 있던 어느 날 ‘들어봐 그리고 펴서 읽어봐’라는 음성에 성경을 펴니 바로 로마서 13장 13절 이하를 읽고 즉시 3년을 눈물로 회개하고 중세 천년의 가장 위대한 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e)이 됐다. 그의 참회록은 지금도 깊은 감명을 많은 사람에게 주고 있다.


금세기의 위대한 작가로 소련에서 자유세계로 망명한 솔제니친이 1883년 그 해의 가장 탁월한 종교인에게 주는 템플(Templeton)상을 수상하면서 연설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릴 때 노인들이 ‘러시아에 이 같은 대환란이 임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이다’고 말하던 것을 들었습니다. 그 후 50여년 동안 러시아 공산혁명에 관한 100여권의 책을 읽고 8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8,000여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그 엄청난 공산혁명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냐고 묻는다면 저 역시 어릴 때 노인들이 말했던 그 말씀 외에 더 적절한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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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땅에 평화의 주님이 오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1) 주님의 은혜가 우리 모든 침례교 가족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이뤄진 놀라운 역사입니다. 특히 영원한 심판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그 분은 희망의 메시지, 회복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감격의 순간을, 복됨의 순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이 땅의 왕으로 오신 분은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지만 온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2023년 바쁘고 어려운 한 해를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보내고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모두가 참으로 많이 수고하셨고 애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이고 감사임을 고백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침례교 총회는 교단의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된 사업들을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단 전체 교회들의 생각과 의중을 다 담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이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