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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본 갈라디아서의 구원론-30

베쯔는 갈라디아서 3장 8절에 있는 ‘아브라함의 복에’ 대한 사도 바울의 해석은 대개 “판타 타 에드네” 표현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이방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기서 “타 에드네”는 “이방인들”을 의미하고 “판타 타 에드네”는 “땅의 모든 족속”과 병행되는 “모든 민족”으로 해석돼야 한다. 사도 바울의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축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구약을 초월하고 있고 사도 바울 시대의 유대교를 벗어난 우리들은 아브라함으로 인해 모든 민족에게 확실하게 축복이 주어짐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하심으로 인한 축복을 확인할 때,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런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도 이런 맥락에서 그 사실을 이해했다고 결론지었다. 즉 아브라함은 사실상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복음을 알고 있었다. 갈라디아서 3장 6~14절에서 바울은 한 번에 율법과 선지자를 5번이나 인용하면서 독점적으로 성경을 다뤘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똑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주장하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들이 됐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갈 3:26).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24절에서 이것은 비유라고 말하면서 두 언약에 대해 설명한다. 하갈은 옛 언약, 시내산, 그리고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연결시키나 하갈과 대조적으로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과 연결시킨다.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 하늘에 거한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한다. 교회의 머리는 부활하사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 예수시니, 이러한 이유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다. 그리고 교회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한 것은 교회가 이미 하늘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너희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함께 부활했고, 함께 하늘에 앉힌바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엡 2:6; 골 3:3). 이는 이미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인해 종말론적 하늘의 존재가 됐음을 말한다. 이는 어떠한 피조물도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만이 하시는 독특하고 특별한 사역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29절에서 “육체를 따라”(카타 사르카)난 자와 “성령에 따라”(카타 프뉴마) 난 자를 대조시킨다. 여기에서의 강조점은 그 두 아들이 대표하는 두 유형의 사람들, 즉 율법의 법령들에 의해 삶을 지탱해가는 자들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상을 이기는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카타 프뉴마를 “약속의 자녀들”(에팡겔리아 테크나)과 동의적으로 사용하며 이후로는 성령의 임재와 인도라는 관점에 초점이 모아진다. 갈라디아서 4장 31절에서는 결론적으로 누가 아브라함의 참된 자녀이며 상속자인가를 말하고 있다. 하갈과 사라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비유(풍유)적 해석을 마무리 하면서 자유한 여자의 자녀인 이방인 회심자들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상속자들이고 ‘우리’라는 표현 속에서 그 형제들 안에 바울 자신도 포함 시키고 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6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란 독특한 문구를 하갈과 사라의 알레고리에 적용시켜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은 이삭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 했고,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 개종주의자들을 이스마엘의 자손이라 했다”고 한다.


두 언약은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종말론적 하나님의 상속자’에 대한 설명으로, 이로써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구원론을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나타난 구원이라 말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은 ‘두 언약’과 함께 에베소서 1장 10절에 나와 있는 이유,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연구자의 주장, 교회가 그리스도의 연합된 몸으로서 땅에 있으나 하늘의 종말론적 존재인 이유)로 인해 통일되게 하려” 한다는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땅에 있으나 천국 열쇠를 가진 하늘의 기관, 이것이 교회요 믿는 자들의 구원을 뜻하는 실체이다. 이를 성취하실 수 있는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이다. 갈라디아서는 이를 ‘두 언약’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3. 하나님 나라의 완성(갈 5~6장)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와 그리스도로 인해 하늘의 앉힌 바 된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완성하시는 것이다. 갈라디아서가 종말론적 구조 속에서 ‘이미’와 ‘아직’이라는 두 시제로 구원을 설명하는 이유는, 갈라디아서 6장 2절의 말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교회의 역할에 있다. 이미 구원받았고, 구원받고 있으며 그리고 구원받을 것이다’는 의미가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첫 열매가 되시는 부활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에 의해 몸으로 세워졌고 자라가는 교회의 성장과 함께 완성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1)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공관복음서를 보면 하나님의 통치영역 혹은 권위영역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설교의 핵심주제였다. 마태는 하나님이라는 칭호사용을 피하는 유대인의 성향을 고려해 ‘천국’이라는 말을 선호했으나, 마가와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호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최초의 선포일 뿐만 아니라 그의 선포의 핵심이라는 것은 성서신학자들의 일관된 견해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는데 대부분 동의한다.

학자들 간에는 나라의 기본적인 의미에 대하여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으나 많은 학자들은 나라는 궁극적 종말(궁극적인 종말론적 질서)이라는 견해를 지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종말이 어떻게 현재적이면서 동시에 미래적일 수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구약과 랍비적 유대교 모두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통치’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현재 왕이시지만 그는 또한 왕이 되셔야만 한다. 예수의 사상에 있어서 기본적인 구조는 종말론적인 두 세대의 이원론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도래를 말씀하셨다(마 12:28; 눅 17:20).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적 도래와 현재적 도래를 모두 말씀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미래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도래를 이적적 행위인 치유 사역을 통해 제기하셨다(마 12:28; 눅 11:20). 곧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고 하셨다(마 12:28). 즉,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이미 이 지상에서 시작됐다. 사단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귀신이 떠나가며, 가난과 저주와 질병에 눌려 있던 사람들이 변화 받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통치의 영역 아래 들어가는 것은 현재 하나님의 나라가 이 지상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미완성의 나라이다. 마귀가 십자가에서 예수님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아직 불 연못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계 20:14).


김종이 목사 성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