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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65)

찬양의 기쁨을 빼앗는 자의 미래

 

 

이탈리아에서 유학했던 친구가 어느 늦은 밤에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를 찾았던 적이 있다. 밤이 깊어 다른 곳은 문을 다 닫았고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열려 있던 셀프주유소를 찾았다. ‘5만리라를 현금투입구에 넣은 후 기름을 넣고 있는데 기름통이 넘치기 시작했다. 그 당시 ‘5만리라면 기름통의 약 절반 정도밖에 채울 수 없는 금액인데 이상하게 흘러넘쳤다. 아뿔싸. 경유주유기를 들고 휘발유주유기로 착각했던 것이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는 경유를 가솔리나(Gasolina, Gasolio)로 부르고, 휘발유는 특별히 벤지나(Benzina)라 부르므로 주의가 요망된다. 휘발유차에 경유를 가득 넣었으니 초비상이 걸린 셈이다. 당장 차를 뒤집어서 기름을 다 토해내야 하는데 새벽 1시에 도와줄 직원이 있겠는가? 불행 중 다행으로 이미 밑에 조금 깔려 있던 휘발유 덕분에 기적적으로 차의 시동은 걸렸다. 길길거리는 소리를 내며 집까지 돌아왔다. 하지만 그 차는 며칠 뒤 고속도로에서 엔진이 눌어붙어 완전히 죽어버렸다.

 

휘발유차에 경유를 넣었던 그날 밤의 사건으로 인해서 바로 그날 낮에 맛보았던 뜨거운 영적 체험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밀라노한인교회의 임마누엘찬양선교단의 음악편곡과 씬디사이저를 맡고 있던 그 친구는 스칼라극장 앞 넓은 광장에서 성악도 30여명과 함께 찬양으로 노방전도를 펼쳤고 찬양의 놀라운 역사를 맛봤다.

 

수만 명에 달하는 각국의 관광객들이 찬양단의 찬양에 귀 기울이며, 환호하며, 찬양의 기쁨에 동참했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체험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신했다. 정말 화끈하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뜨거웠던 영적 체험은 주유소사건으로 인하여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찬양의 체험이 뜨거웠던 만큼 영적 허탈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한다.

 

다윗성으로 이송된 온 법궤로 인하여 다윗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찬양대의 연주에 맞추어서 거의 황홀경에 빠질 정도로 큰 소리로 노래하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춤을 췄다. 다윗은 뜨거운 찬양의 경지에 몰입됐다. 그가 체험했던 찬양의 기쁨과 주님의 임재의 체험은 그에게 엄청난 영적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다윗은 구름 위를 걷는듯한 그 영적 충만함의 기쁨을 가족들과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무엘하6:20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라는 구절이 이러한 정황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뿔싸. 찬양의 기쁨에 잔뜩 취한 그를 처음으로 맞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미갈이었. 냉냉한 얼굴로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하며 날카로운 비난을 퍼부었다. 이 말 한 마디에 다윗은 얼음 땡, 구름 위에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하루 종일 그의 마음속을 뜨겁게 하고 충만하게 만들었던 성령의 체험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길바닥에 떨어진 씨앗을 새가 쪼아 먹듯이, 사탄은 신앙인들이 누리는 영적 충만함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조그만 틈만 생기면 그 찬양의 기쁨이나 성령충만함을 탈취하려고 꼼수를 부린다. 순식간에 영의 세계에서 육의 세계로 돌아온 다윗은 비수와 같은 말로 아내에게 반격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6:21)”. 정말 분위기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 여편네야, 너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자의 딸이야 하는 말이다. 이 얼마나 살벌한 말인가.

 

미갈은 다윗으로부터 성령충만함을 빼앗아간 대신에 그 댓가로 엄청난 저주를 받아야만 했다. 다윗의 이 말이 비록 부부간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잔인한 말이지만, 이 말 또한 하나님의 뜻이 담긴 예언적 선포임을 어찌하랴. 하나님은 오래 전에 미갈의 부친 사울왕을 버리셨다.

 

베냐민지파의 사울왕조를 무너뜨리시고 유다지파의 다윗왕조를 새로이 여셨다. 하나님은 다윗왕조에 사울왕의 피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삼하6:23)”.

 

다윗이 죽을 때까지 미갈과 동침하지 않았던 것인지, 미갈과 동침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태를 닫으신 것인지 우리들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요즘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유행하지만, 고대에는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만큼 더 큰 저주는 없었다. 축복하러 온 자를 조롱하고, 성령충만함을 방해하며 탈취하는 자의 미래는 없다.

 

노주하 목사 / 대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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