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신문 2017년 9월 9일(토) 7면에 “세인의 의혹 받는 동아기독교의 정체”를 풀이하고자 한다. 이 기사는 1930년 8월 7일(목) 중외일보이며, 기사를 쓴 단체는 ‘호서기자동맹 서구지부’이다. 전문의 일부를 인용하여도 이 기사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 첫째, 이 기사를 작성한 호서기자동맹은 사회주의 사상에 기초한 운동을 하였으며, 미신타파 활동의 일환으로 동아기독교를 매도하기 위한 인터뷰를 한 것이다. 1925년 9월에 호서기자동맹이 결성되고, 여기에 공주의 신문기자들이 참여하면서부터 더욱 가속화됐다. 공주지역의 신문기자들은 호서기자동맹을 매개로 당시 새롭게 대두되기 시작한 사회운동의 방향 전환 논의했다. 예를 들면 청년운동 조직내부에서 나이 많은 유지들이나 면협의원 등은 축출하고, 운동의 주도권을 이른바 혁신청년들이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사회주의 사상에 기초한 노동자, 농민운동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했다. 1927년 4월에 개최됐던 공주기자협회의 총회에서는 소년 운동에 관한 건, 노동운동에 관한 건, 소년소녀회 원조에 관한 건, 문맹퇴치에 관한 건, 여성운동에 관한 건, 계급운동에 관한 건, 풍기문란에 관한 건, 미신타파에 관한 건 등
대학생 시절 ‘사회조사방법론’이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낸 민형배 교수가 강의를 담당했다. 민 교수는 첫날 강의에서 “만약 당신이 선거에 나선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답은 여론조사였다. 여론조사 결과가 좋으면 이를 통해 밴드웨건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좋지 않을 경우에도 해당 결과를 가지고 선거 전략을 짜는 등의 순서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현 상황을 아는 것, 그것이 미래의 목표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침례교 제107차 정기총회에는 우리 교단의 주요 현안들이 논의됐다. 가장 큰 이슈는 침례병원 회생에 관한 건이었다. 이밖에도 침신대 문제, 규약개정의 문제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교단지 기자로서의 첫 총회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침례교의 미래를 향한 준비에 대한 관심이 다소 미약해보인다는 것이다. 정기총회 상정안건 어디에도 다음세대를 위한 안은 나오지 않았다. 신안건 시간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이를 위한 내용은 없었다. 총회 의사자료집에 나온 총회 행정 통계를 보고서야 아직 우리교단이 미래를 향한 이정표를 제시하기에는 미흡한 상황이
우리교단 역사상 최대의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07차 정기총회에서 공주 꿈의교회 안희묵 목사가 새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축제를 지향한 강원도 평창총회였으나 총회장 선거가 가장 큰 이슈로 자리 잡는 바람에 축제 분위기는 선거 열기에 묻혀버렸다. 우리교단은 부총회장을 선출해 1년 뒤 총회장으로 추대하는 장로교단들과 달리 새로운 회기 총회장과 부총회장을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 올해 제 1·2 부총회장 선거에는 입후보자가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총회장 후보 안희묵 목사와 박종철 목사(새소망교회) 2파전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현재 교단 내 현안 해법이나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어 대의원들은 자연스럽게 그 결과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기간 내내 “교단 문제에 잘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준비된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부정적인 선거전보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한 안 목사를 대의원들은 선택했다. 이에 반해 박 목사는 “침례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희망제작소가 되도록 앞장서겠다”고 대의원들에게 호소했으나 44차표 차이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우리는 이번 선거결과가 안희묵 새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중세 암흑기 시대에 종교개혁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훨씬 전인 서기 418년, 아프리카 총 공의회인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200여명의 교회의 감독들이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신학사상의 논쟁에 대하여 교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진로를 선택했다. 박해의 터널에서 벗어난 당시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원죄로 타락한 불완전한 인간은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고 당연시하며, 자신의 의지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여 의에 대하여 무책임하고 방종하고 태만했으며, 교회는 그들의 죄에 대한 죄책을 고해성사로 면하게 해줘 사실상 도덕적 해이와 위선을 방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외식적인 신앙의 약점과 모순에 대하여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은 인간이 선과 악 사이에서 자유의지를 통해 선택하게 하셨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의의 요구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을 부여 받은 존재’라는 자신의 신학적 소견으로 강력하게 경고하며, ‘죄란 한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의도적으로 저버리고 스스로 불경건과 불순종의 길을 선택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펠라기우스의 제자인 켈레스티우스는 원죄에 대한 당시 교회의 교리와
루터가 자신의 신학을 상징한다며 만든 문장(紋章) ‘루터의 장미’(Luther Rose) 둘레에 새겨 넣은 글귀 ‘그가 사신다’(Vivit)처럼, 오직 믿음으로 인한 오직 예수가 그 안에 살기 시작하면서 그의 내면세계 ‘아드 폰테스(Ad Fontes)’, 즉 ‘신앙의 본질’이 숨쉬기 시작했다. 그것이 교회와 세상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출발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4오직’ 또는 ‘4솔라’라 할 수 있는 ‘오직 믿음으로’(솔라 피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솔라 그라티아), ‘오직 성경’(솔라 스크립투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솔라 글로리아)으로 거대한 종교권력을 향해 외침으로 사데교회 같은 거기에 생명의 주 예수를 믿음으로만이 의로워짐이 선포됐다. 그의 ‘오직’, 즉 ‘솔라’는 종교, 정치, 사회, 문화예술,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가져왔으며 더 나가 독일과 유럽 그리고 신대륙에까지 변화를 일으켰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결국 본질, 즉 성경으로의 변화였다. 지금 한국교계는 종교개혁 500주년 특별행사들을 준비하며 각종 학술, 퍼포먼스 등 이벤트들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행사 준비
2. 베드로가 전한 복음도 부활 중심이었는가? 베드로가 행한 최초의 복음 전도 설교는 사도행전 2장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현장을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베드로가 한 설교이다. 14~21절은 모여든 군중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광경은 요엘서에 기록된 대로 성령께서 임하셨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임을 설명한 후 곧바로 성령의 강림이 가능했던 이유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선포한다. 그들이 못 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또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는데, 그분이 고난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미 약속하신 대로 아버지한테서 성령을 받아 보내주셨고 그들은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그 군중이 보고 있는 현상이 바로 예수께서 고난당하시기 전에 이미 약속하셨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죽인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해 주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일련의 일들에 대한 증인이었기에 그렇게 담대히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
침례신문에 들어오기 전, 유아세례를 반대한다는 것과 신학의 폭이 넓다는 점, 신학교는 대전에 있다는 점,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우리교단의 전부였다. 때문에 약간 낯선 느낌도 있었지만, 한 달간 지내보니 연일 사고기사가 터져 나오는 타 교단과 비교할 때 매우 성숙하고 건강한 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대전에 있는 침신대에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캠퍼스의 모습에 우리교단 목회자들의 침신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감동스러웠다. 신문사 사무실 분위기도 지금까지 내가 거쳐 온 어느 회사보다도 화목하다. 급여도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산다면 넉넉하진 않더라도 밥을 굶지는 않을 수준이라 만족하며 업무에 전념하고 있다. 기자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마도 자신이 쓴 기사를 누군가 읽어줄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교파 신문에 있을 때는 매일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하며 누군가 내가 쓴 기사를 공유했는지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침례신문에서는 내 기사를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 참으로 행복하다. 그래서 기사를 쓸 때 더 생각하고 쓰고 있다. 취재 나가서 명함 내밀 때 “이런 신문도 있어요? 처음 듣는 곳인데…”란 소리도 이
부산에 있는 왈레스기념 침례병원은 미국 남침례교국제선교부(IMB)가 우리나라 6·25 전쟁 기간 중에 대한민국 임시 수도 부산에 있는 충무로교회(현 부산교회)에서 진료를 시작하면서 설립된 병원이다. 미국 국내가 아닌 다른 나라에 세워진 침례병원 중에서 IMB가 가장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병원이 왈레스기념 침례병원이었다. 중국에서 순교한 의료선교사 빌 왈레스를 기념하는 침례병원은 전쟁기간 중에 수십만명의 환자들을 진료했고 전쟁 후에도 지역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이 당시에는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부산대학병원보다 침례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받겠다고 몰려왔었다). 그러던 침례병원이 IMB 선교사들이 1990년 이후 떠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영악화로 인한 적자가 누적됐고 병원 부채를 갚아나갈 수 없게 되자 지난 2017년 7월 14일 부산지방법원은 침례병원 파산을 선고하게 됐다. 침례병원은 즉각적으로 파산을 재고해달라고 이의신청(항고)를 했지만 아직까지 침례병원의 주인 역할을 할 사람이 법원에 구체적으로 회생신청을 제출하지 않고 있어서 9월 27일이 자나면 침례병원은 경매(공매) 처분되어 사라질 절박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에 의해 정치를 행하는 주의)로 ‘인권’(인간으로서 당연히 갖는 기본적 권리)이란 탈을 쓴 동성애 동성혼 합법화가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너무나도 비참한 일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위협 속에 있습니다. 북한은 날마다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전쟁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다들 괜찮다고 합니다. 동성애 동성혼 나와 상관없고 관심도 없고 오히려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다시 질문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절대 전쟁 일어나지 않고 북한 김정은이 쇼하고 있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새벽기도가 끝난 후 잠시 성지순례기간에 갔던 이탈리아 폼페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으로 B.C. 79년경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롭다고 생각했던 폼페이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왕래하는 경제적 정치적 무역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폼페이에는 커다란 베수비오 이름을 가진 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 산이 휴화산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폼페이가 18세기 중반에 한 농부를 통해 발굴되기 시작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폼페이에 무슨 일이
우리교단은 오는 9월 18일부터 나흘 동안 한화리조트 평창 휘닉스파크에서 역대 가장 많은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총회를 치른다. 106차 총회(총회장 유관재 목사) 집행부는 이번 평창총회가 축제 속에서 치러지기를 고대하고 있으나 교단 안팎의 상황은 그리 썩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최근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인해 전쟁 위기와 두려움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내 편, 네 편’ 논쟁에 빠져있고 문재인 대통령 또한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침례교회 또한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동성애, 이단, 이슬람, 종교인과세, 종교편향 문제 등에 적극 대처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선 교권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교회가 스스로 개혁이나 갱신을 이뤄내지 못하거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세상에서 감당하지 못한다면 복음의 문이 막히거나 제3의 세력에 의해 교회가 힘을 잃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로교단 가운데 하나인 예장 통합의 세례 교인이 지난해 1만2000여명 감소했다고 한다. 한국교회의 전체 교인 수는 특정 교파와 관계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