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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침례교 조직신학자들의 중생교리-(2)

근광현 교수
침신대 신학과
(조직신학)

또한 ‘동시적’이라 함은 중생이 우리 안에서 회개와 믿음이 완성될 때 완성되고, 회개와 믿음도 중생이 완성된 때에 완성된다는 뜻이다. 멀린스는 대그나 보이스와 같이 이 믿음은 오직 은혜를 인하여 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구속을 확보해 주는 공로적인 활동이 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이처럼 멀린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 관점에서 중생의 조건을 회개와 믿음으로 규정했다.


카너는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을 통해 중생의 조건을 제시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소생시키는 행위를 통해 발생한 중생이 믿음보다 앞선다고 주장한 반면, 아르미니우스주의는 구원의 조건인 믿음이 중생보다 앞선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카너는 믿음과 중생을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영적 체험의 두 국면으로 규정한 후에, 인간은 믿음에 의해 중생하지만(갈 3:26; 요 1:12~13), 이 믿음은 하나의 중생적인 행위측면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카너는 구원의 순서가 “회개와 믿음을 통해 체험하는 죄 용서, 칭의, 화해, 양자, 중생, 그리고 성화”로 전개되는 하나의 실재에 대한 다른 묘사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카너는 믿음이란 파산한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인간의 공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카너가 보이스와 달리 믿음과 중생을 각기 다른 의미를 함축하는 하나의 영적 체험 안에 있는 두 국면으로 규정한 후, 중생의 조건을 “회개와 믿음”으로 제시한 것은 올바른 견해라 할 수 있다(막 1:14~15; 행 20:21). 


험프리스에 의하면, 무디는 중생의 조건인 회개와 믿음 사이의 일치를 강조하면서도 믿음보다는 회개를 더 강조하는 편이다. 무디는 고린도후서 7장 8~10절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에 대한 전형적인 성구로 삼고, 그 안에서 “세상 근심과 경건한 근심” 두 개념을 도출하였다. 세상 근심에서 오는 회개는 죄를 향하는 후회와 영적인 죽음으로 이끌지만, 경건한 근심에서 오는 회개는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향하는 구원의 길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막 1:1-4; 행 20:21). 따라서 험프리스의 말처럼, 보이스 외에 다른 조직신학자들이 개혁주의의 구원의 순서를 물려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중생의 의미를 다양하게 파악하면서도 중생의 조건에서 인간의 공로적인 행위를 인정하지 아니했다.


Ⅲ. 중생과 다른 구원의 용어와의 관계
침례교신학자 존 뉴포트(John P. Newport)에 의하면, 전통적인 침례교신학은 중생과 칭의와 양자를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리고 성화는 그리스도인이 점진적으로 펼쳐나가는 것이었다. 이 같은 뉴포트의 말은 중생과 다른 용어들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인가의 문제와 그것이 경험적인 것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1. 중생과 칭의 사이의 관계
대그는 중생과 칭의의 관계를 직접 다루기 전에, 그가 “은혜의 두 쌍의 축복”으로 칭한 죄 용서(pardon)와 칭의를 다뤘다. 그가 죄 용서와 칭의를 먼저 다룬 이유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성령에 의해서 죄 용서와 의롭다 함을 받는 상태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성품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전제 때문이었다. 대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상태의 변화에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본래적 형태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갱신으로 나아가게 한다(골 3:10; 딛 3:5). 이는 그가 제시한 구원의 순서에서와 같이 먼저 상태의 변화인 죄 용서와 칭의를 통해 성품의 변화인 중생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대그는 경험적인 칭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보이스는 중생과 칭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생은 인간의 성품에서 야기한 본성의 변화라면, 칭의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거나 거룩한 본성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의롭다고 선언하는 법정적인 선언(forensic declaration)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스는 중생이 성화처럼 본성적으로나 특성적으로 하나의 변화이지만, 칭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만 변화라고 말했다.


이처럼 보이스는 법정적 선언으로서의 칭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경험적인 칭의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멀린스는 대그와 보이스와는 궤를 달리하여 “생동적이고 실제적”(vital and real) 관점에서 중생과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파악했다. 생동적이고 실제적 관점이란 칭의를 단순히 법정적이고 법률적인(legal) 선언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는 의롭게 된 불경건한 자들이 생동적이고 실질적인 경건한 관계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 안에 최고의 윤리적인 특성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는 칭의가 중생의 능력과 거룩함의 새로운 내적 원리와 함께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멀린스는 중생과 칭의를 불가분리적인 전체의 국면으로 간주했다. 이와 같이 멀린스는 대그나 보이스처럼 법정적인 선언으로서의 칭의관을 유지하면서도, 그들과 달리 윤리적 특성을 갖는 실제적인 칭의를 선호했다. 이 점은 카너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카너는 멀린스의 생동감 넘치는 영적인 칭의 개념에 영혼의 경험적인 측면을 추가했다. 그는 칭의를 단순한 법률적 재판상의 행위가 아닌 하나의 유효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유효적인 것이란 영혼의 경험적인 것을 말한다. 카너에 의하면, 바울이 증언한 구원의 교리는 법률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 그리고 관계적이고 영적이거나 생동적인 두 국면이다.


카너는 이를 다시 법정적 관점과 생물학적(juristic) 관점으로 압축했다. 법정적 관점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신분으로 들어가는 하나님과의 관계 변화를 의미하고, 생물학적 관점은 새 생명을 부여받는 도덕적 본성의 변화이다. 여기서 카너는 중생과 칭의 사이는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앞서는 관계가 아니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한 구원 행위에 대한 두 국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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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2024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3500침례교회와 목회 동역자. 성도들 위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죄인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이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이제는 구원의 완성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몸소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주신 사실을 믿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가르치셨으며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고난 받는 자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회복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믿음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 소식이 복음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