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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아를 사랑한 구미꼬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14:18).


얼마 전, 강화임마누엘 농아인교회에 초청받아 갔다. 교회개척 30주년을 맞아 설교부탁을 받았다.

30년 전 교회개척예배에 축사순서를 맡았고 그 후 10년마다 초청되어 네 번째 갔는데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
듣지도 말도 못하는 한국인 농아를 사랑한 구미꼬 처녀는 가문도 좋고 공부도 신학까지 잘 했고 인물도 좋아 얼마든지 일본인 신랑을 선택 할 수 있었지만 한국의 농아인 이두형 청년을 “에로스 사랑”으로 결혼하고 남편과 같은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50여명의 농아영혼들을 위한 사역을 정말 즐겁게 충성 헌신하는 “아가페 사랑”으로 승화하고 있었다.


30년 전 일본인 구미꼬는 농아교회가 개척을 요청해 도와줬고, 서울지방회에 다른 몇 농아교회와 함께 가입시켰고, 총회에도 가입시켜 준 일이 있었다. 한국인 농아청년을 데리고 일본에 가서 부모에게 소개하니 기가 차고 놀라서 분노한 부모는 3일간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나 계속 꿇어앉은 청년에게 “정말 내 딸이 자네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두형 청년은 수화로 “진심으로 일평생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드디어 일본군 장교였던 장인의 대답으로 허락받아 결혼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영문학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얘기에 못지않은 가슴 울리는 에로스 사랑의 극치로 여겨진다. 중국역사에서 관포지교로 알려진 관중과 포숙의 깊은 우정은 구약성서에서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 곧 “필리아, 필로스 사랑”에 비교할 수 없다. 사랑은 인생의 소금이다. 사랑의 본질은 정신적인 불이다. 사랑은 끝없는 신비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꿈이다.


“사랑은 석탄불 같아서 타므로 놔두어서는 마음을 불태워 버리고 만다.”고 셰익스피어는 말했고, 디킨슨은 “사랑은 인생의 앞쪽이요 죽음의 뒤쪽, 창조의 으뜸이며 이 땅의 설명자이다.” “사랑은 천국이요, 천국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라고 바이런 시인은 말했다.


여기 또 헌금 접시 위에 선 소년의 얘기가 떠오른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어느 작은 시골 장로교회의 목사님에 대한 일화를 읽은 일이 있다. 당시 공업화 현상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가는 작은 시골교회인지라, 목사님이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또 그 동리의 사람들은 까다로운 사람들로서, 저들의 마음은 차가웠고, 복음의 진리에 대해 도리어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러다 보니 그의 사역을 통해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장로들의 선동에 의해 목사님은 강제로 교회를 떠나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이 시골교회를 고생하며 섬겨오던 목사님의 사역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주일 예배 중 헌금 쟁반이 돌려지고 있을 때 한 소년이 쟁반을 받아 바닥에 놓고는 일어나 그 위에 올라섰다. 이 이상하고 괴이한 일을 보고 책망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자, 그 소년은 “나는 어리지만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 나는 드릴 것이 없어 나 자신을 고스란히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이렇게 했습니다.”고 말했다. 사랑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기적의 씨앗이 됐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 8:5)라고 고린도교회에 말씀하셨는데, 이 쟁반 위에 올라서서 자신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하나님께 드린 그 소년이 18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간 최초의 선교사 보비 모팻(Bobby Moffat)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구원시켰다. 이 모든 결실은 그 작은 교회에서 그리고 결실이 없어 인정을 못 받은 그 목사님의 인격과 충성스런 사역에서 시작됐다. 그 목사님의 신실한 인격과 삶에서 감동과 영향을 받은 한 소년의 열매로 아프리카의 수많은 영혼을 결실로 거둔 것이다.


나는 그 옛날 모팻 선교사의 일화는 전도에 큰 도전이 되어 개척교회 문 닫게 된 이원교회 4인, 도안교회 8인, 남문교회 10인을 데리고 목회할 때 사람을 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 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슥 4:10)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하는 작은 일에도 주님은 손해 보거나 실패하시지 않으신다. 낙망치 않고 사랑으로 충성을 다할 때 기적의 열매는 맺힌다.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의 ‘수잔나의 피흘린 사랑’ 이야기가 떠오른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려 28세의 수잔나 페트로시안(Susana Petrosian)과 네 살 된 딸 가야니가 건물 벽 속에 갇혔다. 모녀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죽음의 공포뿐이었고 아이는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울부짖었다. 그때 어머니 수잔나는 유리조각으로 손가락을 찔러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였다. 어머니는 딸이 보챌 때마다 차례차례 손가락을 베어 아기의 입에 물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 모녀가 매몰된 지 14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런데 어머니 수잔나의 손가락 10개는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십자가상에서 머리와 양손과 옆구리의 물과 피와 온 몸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가 골고다 언덕을 적시고, 오늘날 우리 인류의 죄악을 씻기고, 그 피를 성찬에서 마셔 우리가 살아가는 새 생명의 기적의 주님께 영원한 찬송과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돌리며 우리 목회자들은 물론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나 성도들도 나사렛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야겠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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