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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부하게 살아 왔어요

하늘붓 가는대로 -136

권혁봉 목사
한우리교회 원로

80을 훨씬 넘도록 살아오면서도 지금까지 나는 전혀 가난을 모르고 부(富)하게 살아왔다.
살아온 과거를 곰곰이 되돌아봐도 가난하다는 생각 없이 오직 부한 생각으로 살아왔었다.
그러나 단 하룻밤 지독하게 가난했던 밤이 있었다. 가난 공포의 밤이었다. 그 밤은 치명적인 가난의 하룻밤이었다. 이 하룻밤을 제외하고는 가난하다고 느껴 본적이 없다.
최후 절명적인 가난의 그 하룻밤은 어떤 밤이었던가를 회상해봤다.


나는 1960년도 아무런 외부 보조도 없이 강릉소재 관동대학교에 만학의 문을 열고 들어갔었고 그때 이미 식구는 두 아이를 데리고 있는 가족이었다. 그날 밤은 공포의 밤이었다.
내일 아침끼니가 없이 밤을 보내야하는 밤이었다. 두 아이는 밥 달라고 할 것인데 빈 숟가락을 내어 놓아야할 아침이다. 나는 아내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했다. “여보, 가난이란 무엇이요?”


아내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내일 아침끼니 걱정뿐이다. 자꾸만 답을 요구하는 나에게 아내는 “시끄럽소 마.”그것뿐이었다. 나는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이 가난을 체험적으로 정의해야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자문했다. “가난이란 무엇인가?(what is the poverty?)” 가난은 단순히 기분이 나쁜 것이었다. 내일아침 끼니가 없는 마당에 기분이 좋을 것은 없지 않은가?


극도의 가난은 단지 기분 나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이었다. 그런데 처절한 가난의 그 밤도 해가 뜨자 사라졌다. 그때 나는 학생영어 과외지도를 하고 있었다. 새벽에 어느 과외 고등학생 한명이 과외비를 가져왔다고 봉투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지금 그 과외비 내역은 모른다. 아내에게 쏜살같이 이 봉투를 전해주었다. 나는 그 학생을 작은방 윗목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그 학생은 과외교습을 받고 떠났다.


아내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침식사 하라고 청해왔다.
흰쌀밥, 두부, 된장으로 된 조반상이었다. 아이들도 상에 둘러않아 냠냠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 학생이 준 과외비로 당장 아침시장을 봤던 것이었다. 그땐 한국의 재벌 고 이병철 회장님의 생존시기였는데 나는 그 회장님보다 더 부자같았다. 그 고마운 학생은 누군가? 하룻밤 가난을 면하게 하고 아침에 나를 부자로 만들어준 그 학생은 누군가? 침례신학대학교 교수로 은퇴한 박영철 박사였다. 그때 박영철 박사는 고등학생이었다.


나는 이날 하룻밤 가난 외에는 언제나 부하게 살았다. 돈이 많아서? 아니요. 일찍 주택이 있어서? 아니요. 투자한 게 있어서? 아니요. 수입원이 좋아서? 아니요. 내가 한평생 부하게 산 것은 가슴에서 꽃피었다. 내 인생의 동반자 아내 가슴속엔 욕심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가슴속에도 욕심이 없었던 것 같다. 무욕즉부(無慾卽富)다. 지금 이 노년에도 나는 부하게 살고 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부하게 살았다고 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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