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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기르기

백동편지 - 47

 

어느 날 아침에 아내가 주방 에서 큰 주전자에 물을 넣었다 뺐다를 여러 번을 반복했다. 콩나물을 기른다는 것이었다. 시루나 콩나물 기르는 그릇이 아닌 주전자에 콩을 넣고 아침 저녁으로 똑같은 일을 반복한 결과 주전자 속에는 수북한 콩나물이 담겨있었다. 신기하듯 콩 담음 그릇에 물을 부으면 다 빠져 나간 것 같은데 어느새 콩나물이 자란 것이다.

 

진도에서 목회를 하며 시작했던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학교가 이제 초등학력 인정 문해학교가 됐고, 이제 올해만 마치면 정규 교육부 인정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다. 벌써 삼 년이 지난 것이다. 삼 년 전 처음 문해학교를 시작한다고 하니 우리가 언제 삼 년을 공부한데요? 이제 공부해서 뭐에 쓴데요?”라고 하던 분들이 벌써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도 해도 소용없어요, 문만 나가면 다 잊어 부러요, 선상님만 헛수고 하는 거라요.”고 하셨던 분들이다.

 

그때마다 콩나물 기를 때 물주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날 뚜껑 열어보면 콩나물이 자라있는 것 아시잖아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이들 같지 않고 배우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것이 쉽고 빠른 연세에 있는 문해학교 학생들에게 콩나물에 물 주는 것 같다는 표현이 너무 적절하다.

 

또 바닷가에 사시는 분들이라 김 양식을 위해 바다에 넣어 놓은 김 발에 바닷물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 어느 날 김 발을 들면 김이 붙어 있지 않느냐?는 무식한(?) 설명에 이해하신 듯 고개를 끄덕이시며 공부하 시는 분들이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에서는 매일 30여 명의 아이들을 만난다. 농어촌지역의 아이들은 부모들이나 가정에서 생활하는 시간보다 센터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처음 초등학교 일학년이 되어 센터에서 만날 때는 코흘리개 같던 아이가 한참을 지나고 나면 훌쩍 큰 모습으로 자라있다.

 

학교생활이 끝나고 저녁 시간을 방치하다시피 할 아동들이 아동센터라는 돌봄 기관을 통해서 신체의 건강과 함께 정서적 건강으로 균형 잡힌 아동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규칙을 지키고, 학습을 하고, 함께 생활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투정하던 아동들이, 콩나물 자라듯 나라나 성장해 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코로나19로 인해 긴급 돌봄만 가능한 시간에도 20여 명이 넘는 아동들이 센터에 출석했다. 식사와 안전을 위해 집에 있으라고만 할 수 없어, 마스크 바르게 쓰라고 소리를 지르고 방역에 신경을 쓰며 최선을 다해 본다.

 

서남 단 끝자락에 위치해 있지만 아동들의 재능을 개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위해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 플롯, 피아노와 기타까지 악기를 학습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 교통편이 만만치 않다. 감사한 마음이나 소중한 마음도 없이 아동들은 힘들어 그만 두고 싶다고 몸부림을 칠 때마다 콩나물 담긴 주전자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썩어 냄새가 나는 것을 생각하며, 콩나물 기르는 마음을 떠올려 본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대전에서 하던 지역아동센터를 이곳 진도에서도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 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하나 없네찬양의 가사처럼, 십여 년 후에 사용될 것을 아시고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콩나물에 물을 준다. 어렵다고 투정하며 배운 영어 노래로 귀가길 차 안에서 함께 부르는 찬양은 비록 발음이 틀려도 신난다.

 

10월 초 하루 금식하며 함께 기도했다.

하루든 한끼든 동참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기도가 헛수고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계속 이어 눈에 보이고, 주님께서 일하심을 느낄 때까지 기도를 하자고 호소한다.

 

백동에 와서부터 매일 저녁 기도팀과 함께 기도회를 하고 있다. 예배당의 변경으로 장소가 없을 때도 성도의 집 거실에서도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콩 담은 주전자에 물갈 주어 콩나물이 자라듯이 응답될 때까지 끝까지 기도하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18:7)


김태용 목사 / 백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