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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을 부르는 힘의 원리

상담과 치유 - 45

  

코로나 사태로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강한 분노로 거리로 나왔다.

과잉진압으로 인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은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뿌리 깊은 사회적 이슈를 건드렸고 쌓여왔던 분노의 뇌관이 됐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평화시위로 모이기 시작했고, 또 다른 이들은 폭동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한인사회도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듯 폭동에 희생이 되기도 한다. 성도님의 가게가 부서지고 도난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불안한 현실은 뉴스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 코 앞까지 훅 침범해 들어왔다.

 

이 사태는 우리에게 주어진 권위와 파워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힘은 영향력이다.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미치며 산다. 우리가 선 자리는 그 위치에 따르는 권위를 가진다. 우리에게는 교회의 리더로서, 직장의 일원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로서 힘을 갖는다. 심지어 아주 어린아이들도 어떻게 해야 부모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자녀들이 가진 파워가 부모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누가 이 힘을 더 많이 가지느냐로 끊임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부부의 주도권 싸움, 아이들과의 기싸움 등 서너 명이 모인 가정에서도 파워 게임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힘을 쓰며 산다.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산다.

 

자신이 가진 힘으로 체포돼 묶여 있는 사람을 불필요하게 더 찍어 누르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억지로 말을 듣게 한다.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폭력에는 더 강한 폭력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 혼란의 틈을 타 어두운 거리에서 가게들을 부수고 물건들을 훔치고 이익을 챙기는 폭도들도 있다. 자신이 가진 지적 힘으로 n번 방을 만들고 성을 착취하며 다른 이들의 마음까지 파괴하는 데 쓰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힘으로 다른 이의 파괴를 시도한다. 힘의 남용이고 오용이다. 누군가가 그 힘에 눌려 죽어갈 때, 바로 그 옆에 서 있던 경찰처럼 방관 하는 사람도 있다.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다. 강건너 불구경이 전문이다. 내게 별 지장이 없는

 

한 참견 안 한다. 힘의 낭비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쓴다. 자신이 선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긍정적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 책임감과 사명을 가지고 정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경찰도 있고, 거리로 나와 정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평화시위대도 있고, 이 힘든 때에 새벽마다 무릎 꿇는 목회자와 성도들도 있다. 자신이 가진 지적, 기술적 힘으로 병든 사람을 돌보는 많은 의료진이 있다. 힘의 선용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시고 힘을 부여하셨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킬 엄청난 힘을 부과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힘은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주 오해한다. 이 힘이 지배를 위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내 말을 듣게 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잘못된 세상을 부숴서 내가 생각하는 데로 바로잡고, 못난 배우자나 자식을 고치기 위한 것으로 쓰려고 한다. 혹은 나를 깔보지 못하게, 내게 손해를 끼치지 못하게 위협하는 도구로도 쓴다.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상사의 말 한마디에 꼼짝도 못하게 활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힘을 가진 자리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거듭 보여주신 권위와 힘은 뜻밖에도 약함에 있다. 벌거벗겨지는 수치와 배신당하는 아픔에 있었다. 속이 뻔히 들여 다 보이는 약아빠진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더러운 발을 씻기는 섬김에 있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위는 섬김과 책임이 키였다.

 

수갑 찬 사람의 목을 찍어 누르는 그곳에 서 있었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배하는 힘에 편승해서 희열을 느끼며 돕고 있었을까?

방관하며 구경하고 있었을까? 소리 질러 말리고 비난하고 욕했을까? 아마 이 중에 한 방법으로 내게 주어진 힘을 쓰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 아마도 온몸을 던져 대신 깔리시지 않으셨을까? 아래 깔린 범죄자 대신 죽지 않으셨을까?

 

온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완전히 내려놓으심으로 그 범죄자를 살리지 않으셨을까? 지금 우리가 사는 어두운 세상과 가정에 소망이 있다면, 회복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약함뿐이다. 자신을 위해 쓰는 힘의 내려놓음이다.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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