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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참 중년 미녀였다

하늘붓 가는대로 –184

내가 시내 전철을 탄 시간은 여름 오후 4시경인가 싶다. 동대문역사 문화역에서 한 여인이 건너편 경로석에 와 앉았다. 오후라서 그녀와 나사이에는 가리울 승객도 없는지라 그녀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물론 나와 그녀는 생명부지간이다.

 

그런데 오늘 오후 나는 전철 여행 중에 값내지 않고 중년 미녀를 바라 는 기쁨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일상 속의 보너스로 생각한다. 에이 목사치고는 좀 지나친 감정표현이 아닌가라고 옆구리를 슬쩍 찌를 다른 동역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앞의 중년 미녀는 60세 후반인듯 한 여인이었다. 아래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상의는 하얀 블라우스 옷을 걸쳤는데 의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의 키는 어림잡아도 확실히 나의 163cm보다는 더 올라간 신장이었다.

 

샌들을 신은 그녀의 열발가락은 투명체로 손질되어 있었 다. 뭉실뭉실하게 부풀어있는 머리 카락 모습이 마치 구름 같았으나 단지 검은색 구름이었다. 눈은 맑은 호수처럼 시원하고 입술은 통통한 앵두 같고 코는 클레오파트라의 그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가끔 눈을 감았 다떴다 하는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다. 얼굴색은 거의 백인같이 흰색인데 양볼엔 약간의 홍조가 띄었다. 가벼운 핸드백을 걸친 팔아래 손에는 읽다가 그친 책이 들려 있었다. 나의 시력이 좋은 탓에 그녀가 지닌 책명을 알아볼 수 있었다.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 미녀가 지닌 책은 내가 번역한 프랜스시 A쉐퍼의 “진정한 영적생활”(생명의말씀사)이었다. 그녀는 현숙한 미녀였다. 그 미녀는 확실히 복음크리스천이라 짐작할 수있는 것은 쉐퍼책의 독자라는 이유에서다.

 

이 미녀이야기는 그만하자. 중년 미녀 이야기는 마치 옛날 소설가의 주인공 묘사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째서 나는 전혀 생명부지의 그녀에 대해서 이런 감정을 가졌을까.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첫째 이유는 80이 훨씬 넘은 시니어이지만 아직도 정서를 잃지 않고 지니고 있으니 정신건강 O.K 아닌가 말이다.

아주 늙어 신혼영(신혼영이 맥을 못추면 주변 반응은 제로상태 아니겠는가.) 둘째로 감사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창조를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美)를 미로 보고 추(醜)를 추로 파악하는 미감(美感)은 건전한 신앙인의 인격구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조를 감상하라는 마감을 주셨다.

 

나는 그 미감을 단지 이 노년에도 살리고 있었을 따름이다. 미녀를 보고 미를 감상한 것일 뿐 성(性)을 상상한 것은 결코 아니고 말고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5:27~28)이 말씀에 걸린 나는 아니었다. 그러나 경건하다는 핑계로 인간의 정상적인 감정까지 박살내는 것은 창조의 파괴 행위이다.

 

내 눈에는 지금도 80세 시니어 아내가 여자로 보인다. 경건 신앙은 건전 인격을 지닌다. 미를 미로 보는 것은 아주 경건한 신앙자세이다. 폐일언 하고 나의 중년 미녀 감상의 자연성을 다음 성구로 끝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그녀는 참 중년미녀였다. 그런데 나는 그 책의 번역자가 나요라는 말 한마디도 건네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그 미녀는 나도 모르게 하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권혁봉 목사 / 한우리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