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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장 21절

약속의 묵상-10
최천식 목사
약속의학교 대표

아시아경제신문 취재본부장인 왕성상이라는 분이 ‘음악기록을 통해 본 가수들의 노래와 삶’이라는 글을 통해 가수들의 운명이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와 일치하다는 것을 발표했다. 이 글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가수 중에 슬픈 노래나 비관적인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일찍 죽거나 끝이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밝고 긍정적인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이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전개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가요기록에서 대중가요 1호곡 ‘사의 찬미’를 부르고 히트시킨 윤심덕은 29살 때 한·일 현해탄에서 투신자살했다. 여가수 양미란은 ‘흑점’을 부르고 히트시킨 뒤 골수암을 앓다가 1980년 요절했다. ‘흑점’의 노래엔 “태양의 흑점처럼 어두운 내 가슴~”이란 가사가 나온다. 우주에서의 흑점은 사람 몸의 암에 비유된다. 결국 양미란은 그의 부른 노래의 가사대로 암에 걸려 요절했다. ‘곡예사의 첫사랑’을 부른 박경애도 밝지 않은 노래를 부르다가 삼성서울병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차중락은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고 27살에 낙엽처럼 쓸쓸히 가버렸다. ‘수덕사의 여승’을 히트한 송춘희는 자신이 부른 노래처럼 불교에 귀의해 중이 됐다. 그녀의 고모할아버지가 서울 답십리 장로교회를 지었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이 노래가 히트하자 불교로 개종했다.


  반면에 ‘나는 행복합니다.’를 히트시킨 윤항기는 목사가 되어 예음예술종합신학교의 학장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가수 송대관은 ‘해 뜰 날’을 부른 뒤 쨍하고 해가 뜨는 히트곡을 쏟아냈다. 그는 가수협회의 회장으로 교회의 집사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뇌는 98%가 말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노래는 가사에다 곡조까지 실어 말보다 영향력이 크다. 가수는 노래 취입 때 같은 곡을 2,000~3,000번씩 부르며 연습한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가수는 서서히 그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 간다. 우리가 말하는 것과 부르는 노래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대한민국의 운명을 노래 하나로 바꾼 분이 계시다. 그분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한 대한민국을 오늘의 세계 10위안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신 분이다. 그 분이 대통령 재임시절에 필자는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아버님이 시골에서 목회를 하셨기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이 되면 부모님이 목회하시는 시골에 내려가곤 했다. 아침에 잠을 깨우는 노래가 있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부자 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매일 같이 전봇대에 달린 확성기를 통해서 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너무나도 그 노래를 많이 듣고 불렀기에 지금도 나의 뇌리에 남이 있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 사람들이 패배의식과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그 때에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노래를 통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식을 개혁하였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과 말과 노래가 결국 대한민국의 운명을 오늘날과 같이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의식이 먼저 개혁되지 않으면 참다운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먼저 의식의 개혁이 필요하다. 의식을 개혁한다는 것은 마을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요 그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지으셨다. 오늘 하루의 삶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긍정적인 노래를 부름으로 나의 운명을 바꾸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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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