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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1)

오순절 성령운동의 이해 - 13
김한순 목사
홍성성산교회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사의 회개
미국에서 1906년에 윌리엄 시무어에 의해 로스엔젤레스 아주사 거리(Azusa Street) 부흥집회에서 본격적으로 성령의 불길이 타올랐던 시기에, 한국은 1907년도에 평양에서 영적 대각성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였다. 불교와 샤머니즘의 뿌리 깊은 전통 가운데서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한국 땅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784년 천주교 신부들에 의해서였다. 1866년 대원군 집권 당시에는 그 핍박이 극에 달해 약 8000명의 천주교 주교와 신부 그리고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다. 


최초의 개신교 역사에 있어서 선교사들이 인천 항구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천주교가 들어온 지 약 100년이 지난 후였다. 1884년에 장로교 선교사인 호레이스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나란히 한국 땅에 발을 디디게 됐다. 두 선교사는 모두 학생 자발운동 출신으로 같은 배를 타고 한국에 온 것이다. 그런데 개신교 선교사로서 이들보다 먼저 한국에 도착했으나 일찍이 순교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1865년에 영국 웨일즈에서 온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였다.


이렇게 한국의 19세기 선교역사는 평탄하지 않았다. 1900년이 시작되고 20세기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지만 한국 교회는 크게 부흥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한국의 개신교는 캐나다에서 온 감리교 선교사 하디의 주도하에 1903년 원산에서 이뤄졌던 성경공부로 회개와 자백의 거대한 물결이 일었으며 비로소 이를 시점으로 성령의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04년에서 1907년 사이에 거대한 부흥운동의 물결이 일어났는데 1906년 평양신학교 학생이었던 당시 길선주 장로가 새벽기도회를 시작해 기도운동을 전개한 사건이었다. 이후 길선주 목사의 인도하에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때 길선주 성령운동에서는 방언이나 신유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역사적 기록은 찾을 수 없었지만, 장차 한국과 세계를 향한 새로운 오순절 부흥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많은 예언은 있었다. 빈슨 사이난은 1906년 미국에서는 윌리엄 시무어에 의해 로스엔젤레스 아주사 거리에서 부흥이 일어난 이후, 캘리포니아, 시카고, 뉴욕, 뉴저지, 플로리다, 캐나다 등지에 성령의 불길이 타올랐다면, 한국에서는 1907년도의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부흥은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1903년 하디 선교사에 의해 원산에서 시작됐다. 그는 몇 해 동안 한 사람의 전도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자기가 배운 지식만을 전달한 결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1903년 원산에서 선교사들의 집회가 개최됐을 때, 설교준비를 하는 중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기 않겠느냐”는 누가복음 11장 13절 성경구절을 읽다가 성령충만을 받았다. 이에 그는 기도에 전념한 나머지 자신의 선교열매가 없었던 것에 대한 회개와 자백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의 성령에 의한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원산에 이어 평안남도 평양에서도 1904년에서 1907년 사이에 거대한 부흥의 물결이 일어났는데, 이 부흥운동은 회개를 촉구하고, 성결한 삶을 강조하며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1905년에서 1906년까지 미국 장로교 선교사 이길함 목사가 한국교회의 제직들을 위하여 특별 집회를 인도했을 때, 1906년 초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교회마다 성도가 차고 넘쳤던 일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이 모여 낮에는 사경회로 성경공부를 하고 밤에는 부흥을 위한 전도대회를 가졌다.


이듬해 봄에는 길선주 목사가 서울에서 사경회를 열어 성령의 도를 가르쳐 대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1907년 목사가 된 후 별세하기까지 28년간 전도 사업에 헌신했으며, 그는 새벽기도를 창시하여 회개운동을 전개했고, 요한계시록 1만독을 했으며, 한국교회 부흥사경회를 확립하고 말세론을 통해 신음하는 동포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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