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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교회의 성령 운동 (1)

오순절 성령운동의 이해 - 25
김한순 목사
홍성성산교회

안디옥교회 설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
예루살렘교회 이외에 이방지역에 최초로 설립한 교회는 안디옥교회이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와 비교해 볼 때 이방인 선교에 더 적합한 조건들을 지니고 있었다.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예루살렘교회는 아직도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복음”이라는 복음주의적 신학보다는 율법과 복음의 조화 문제를 두고 갈등하는 저급한 신학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안디옥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였기에 복음의 핵심을 받아들이는데 장애물이 될만 한 것이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안디옥교회는 이방 선교를 위해 정열적으로 헌신하기에 더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사역에서 영입된 사람들이었다(행 11:19~30).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부흥 소식을 접한 하나님의 직접적 역사임을 친히 목격한 바 있었다. 그는 안디옥교회의 계속되는 영적 부흥에 질적 성장을 접목시키고자 다소에 있는 바울을 초청했다(행 11:25~26).


그 후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로서 안디옥교회가 후일 선교 전초기지가 되는데 견인차 역할을 감당하게 됐다. 이렇게 안디옥교회는 성령 충만한 바나바의 파견으로 인해 영적 물적으로 부흥이 됐고, 바울과 협동목회로 인해 영적으로 든든히 서게 됐다(행 11:26). 그 결과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안디옥교회 설립의 직접적인 발단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본격화된 핍박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이 핍박은 주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집중된 것으로 보이며,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익명의 전도자 역시 핍박을 받은 헬라파 유대인들인 것으로 사료된다(행 11:19~20).


이처럼 핍박의 일차적 대상이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까닭에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그 중에서 두 가지 주요한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아직까지 기독교가 유대교의 종파로 간주됐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헬라파 신자들의 신앙이 히브리파 신자들의 신앙에 비해 반유대적 경향을 짙게 띠었다는 점이다.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스데반의 변증적 설교(행 6:8~7:60)에는 성전과 모세의 율법을 과감히 거부하는 내용이 있어 이런 스데반의 반유대교적 신앙은 당시 히브리파 기독교인의 율법관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둘째는 이방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경륜이라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히브리파 기독교인들은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 자체를 회피했을 뿐 아니라 죄악시했을 정도이다.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를 만난 사건을 두고 히브리파 교인들이 비난한 사실(1~3절)은 그와 같은 예를 보여준다. 이방인들이 집단적으로 복음을 영접했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교회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바나바를 안디옥교회에 파견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는 바나바 파견으로 인해 오히려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던 바, 그것은 다름아닌 영적, 물적부흥의 도래였다. 바나바로 인해 안디옥교회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으며, 바울과의 협동목회로 인해 영적으로 든든히 서게 됐다(행 11:24~26). 그 결과 그들이 세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아무튼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안디옥교회 신자들에게서 유래됐고, 이것은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열심히 그리스도를 사랑했음을 말해준다.


안디옥교회에 나타난 직제문제
켐벨 몰간은 안디옥교회 설립의 주요 동인에 대해서 사도행전 2장에서와 같이 성령 침례에 의해 세워지게 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했다. 그는 구브로와 구레네의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서 헬라 사람들에게 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으며, 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받은 이 헬라 사람들은 믿고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성령침례에 의해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을 이룬 이 헬라 사람들이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안디옥교회는 어떤 공적인 활동의 결과로서 세워진 것이 아니었고, 오직 그것은 주 예수에 대한 선포와 그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의 역사에 의하여 그의 생명 안으로 연합되는 침례를 받은 사실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수리아의 안디옥교회, 곧 세계선교의 전진기지가 된 안디옥교회는 대사도인 베드로나 요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데반 박해로 인해 각지로 흩어진 평신도들에 의해 세워졌다. 물론 이들 대부분들도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이며 자연히 유대인들에게만 전도하고 이방인 전도에 대해서는 제한된 면에서 전도했던 것으로 보아 여러 곳에 흩어진 유대인 신도들은 아직도 유대주의의 굴레를 벗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켐벨 몰간에 의하면, 안디옥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독자적인 성격이 아주 강하다고 하였다. 안디옥교회 교인들이 사도들에게 묻지 않고 독자적으로 일했다는 면에서, 즉 그들이 사도들의 권위에 의지해 일한 것이 아니라는 면에서 그들의 일은 “사도적”(apostolic)이 아니라고 했다. 안디옥교회 교인들은 비록 자신들이 사도가 아닐지라도 복음 내용의 통일성을 깨뜨리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영광을 받으신 한 하나님, 한 주, 한 신앙, 한 침례를 중심으로 뭉쳐 일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는 오늘날 제3의 바람에서 일으키고 있는 신사도운동가들이 제시하는 사도직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본다.


최초로 이방인 선교에 앞장을 섰던 안디옥교회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 앞서 신사도개혁운동에서 보았듯이 오늘날에도 이 직분에 대한 공공연한 시행을 강조하며 이를 가리켜 나름대로 개혁적인 조치라고 주장하는 신사도운동주의자들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들과 교사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칼빈은 에베소서 4장 11절 말씀과 고린도전서 12장 28절 주석에서 “교사”와 “선지자”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본절 곧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는 서로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누가가 의미하는 바는 교회에 가르치는 면에 있어서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제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들은 예언에 뛰어난 자들로 설명하는 자들이 있지만, 칼빈 자신은 오히려 성경에 대한 뛰어난 주석가들로 간주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