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두 판의 증거를 가지고 하산할 때 자기 얼굴 꺼풀(Skin)에 광체가 난 것을 자기도 몰랐다. 단지 하산하니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남은 것을 보고 접근하기를 두려워하니, 모세는 그러지 말고 가까이 오라 해놓고 시내산에서 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에게 명했었다.
그 다음에 모세가 할 일은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씀을 권위 있게 전하는 동안에는 그의 얼굴 꺼풀의 광채를 그냥 두었다가 그 일이 끝나자 재빨리 한 일은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였다(출34:29-33).
왜 그는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던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출34:35).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 얼굴 꺼풀의 광채만 계속 보면서 모세를 하나님 위에 올려놓거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기억하지 않고 그 광채에만 시선 집중할까봐 모세는 걱정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모세는 주저 없이 수건(Veil)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던 것. 광채를 보지 마오, 나를 보지 마오, 오직 여호와와 그의 말씀만을 보고 듣고 하세요. 하는 것이다. 자기는 nothing이고 하나님은 Everything이 아닙니까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도끼와 찍는 자가 다르며 톱과 켜는 자가 다르면 막대기와 드는 자가 다르며 몽둥이와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사10:15).
모세는 진흙과 토기장이가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사64:8). 한국 민속소설에 나오는 대로 방자와 이도령이 다르다는 것도 모세는 알았던 것 같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친교 했기 때문에 얼굴 꺼풀의 광채가 있게 마련인데 이 광채를 자기 소유물로 알고 남용하는 자가 있는 것도 문제이려니와, 자기의 수건으로 아예 이 광채를 가리 우고 자기 수건을 반짝거리게 하는 것도 문제 중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자기 수건은 무엇인가? 온갖 기독교 단체의 장(長)자리와 감투자리가 수건광채가 되고 있지 않는가? 책 한권 쓴 것이 수건광채가 되고, 자기의 성가 한곡이 그렇고, 봉사행위가 그렇고, 희생이란 공덕이 그렇고, 겸손이라는 미덕이 그렇고. 한 행사에 수십명의 사진의 신문에 박혀있는 현상이 그렇고. 자기의 명설교가 그렇고, 자기의 뛰어난 목회실적이 그렇고, 모두 빛나는 인간의 수건이었다.
모세는 수건으로 자기광채를 가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유혹 받지 말라고 했건만, 사람들은 수건으로 자기를 감추려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수건의 광채로 자기를 드러 내고자하는 판이니 지금 절실히 모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水流(수류) 권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