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인이 쓴 모책명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하여 읽었지요. 첫 장부터 계속 읽어나가는 동안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그 책의 어느 한 부분을 아래에 소개할 테니 독자들과 함께 풀어볼까 한다. 하긴 저자 모인에게는 좀 미안한 감이 들지만 어떤 교훈을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나누고자 하는 심정임을 밝힌다.
『이제 복음 안에서 모든 교리를 통시적으로 이해하려면 먼저 교리 자체가 갖는 약속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즉 교리를 경험된 인간의 이성적 체계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가운데 사용하는 논리적인 언어가 아니고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불합리하고 모순되고 왜곡된 삶 속에서 구원의 진리를 나타낼 하나님의 약속의 언어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럴 때 모든 교리는 역사적인 지평 속에 먼저 우리에게 구원을 선포하는 복음의 종말론적 진리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교리가 복음의 종말론적 사태에 참여한 다는 것은 바로 교리가 형이상학적 논리적 체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미래를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역사화 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선 위의 문장 한쪽을 떼어 내어 와서 읽고 또 읽고 아무리 맞춰보려고 해도 통하지를 않는다. 이것을 영작해 볼까 해서 영어로 옮기려 해도 문법구성이 되지를 않고 적당한 말로 옮길 영어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저자는 자기도 해놓은 말이 이해 곤란한지 한 페이지 안에 “즉” 이란 말고 “다시 말해서” 이란 접속사가 수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한 문단을 싣고는 이어서 “즉” 혹은 “다시 말해서” 라고 하니 아무래도 자기와 독자들도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이 느껴져서 그런 부가설명이 필요했던 것 같았는가 보다.
성경은 쉬운데 설교는 어렵고 설교보다 더 어려운 것은 교리 설명이나 신학이라면 성경에게는 모두 도움이 못되는 부담적인 요소들이 아닌가 싶다. 필자 자신의 이런 에세이 자체도 어려운 표현은 아닌지 내심으로 은근히 겁이 난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의 뜻은 만인이 이해할 수 있게 제시되고 있다. 게다가 성령의 조명을 받으니 말씀의 내용이 그냥 드난다고 본다. 한 구절을 놓고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된다면 그것은 해석의 장난일 뿐이다. 그래서 필자가 내린 딱금한 말은 제발 하나님의 말씀을 꽈배기식이나 새끼 꼬기식으로 만들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꽈배기 과자를 알지 않는가? 두 개의 독립된 튀김 자루를 함께 꼬여서 하나로 만든 과자 아닌가? 새끼도 그렇다. 각각의 짚 오라기를 두 개로 만들어 그것을 한 개의 줄로 꼬는 것이니 나는 어릴 때 많이 해본 작업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명료 단순한 말씀을 사람이 복잡하게 하지 말자구나. 말씀에 누더기 옷을 입히지 말자구나. 설교학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오죽하면 가장 명설교는 설명 없는 성경 본문 낭독이 아닐까 싶다.